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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싸가지'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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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싸가지'가 '메시지'다

입력
2005.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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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메시지라도 그것이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이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캐나다 출신 커뮤니케이션 학자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가 메시지’라고 했다. 인터넷 시대에도 그 명제는 유효할까? 물론 유효하지만 더 중요한 명제의 뒤로 밀려나야 할 것 같다. 표현이 상스럽긴 하지만 ‘싸가지가 메시지’라는 명제다.

인터넷 시대의 의견 폭발은 기가 질릴 정도다. 지식인과 엘리트가 공공적 말과 글을 독점하던 시절과 비교하여 놀라운 축복임이 틀림없지만, 이제 그 누구건 “저요! 저요!”를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의견과 주장의 홍수 속에서 튀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관계까지 독설의 대향연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독설의 민주화’다. 과거 독설은 희소가치가 있었다. ‘독설가’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도 극소수였다. 그러나 이제 독설가는 공급 과잉이다. 지식계 일각의 아웃사이더들이 애용하던 독설은 이제 사이버 공간에 철철 흘러넘치고, 심지어 정ㆍ관계 인사들까지 독설가 대열에 뛰어들었다. 유사 이래 최초라 할 독설의 대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설의 민주화’는 메시지의 위상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제 중요한 건 메시지가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의 농도가 공유되게끔 전파하는 선동이 더욱 중요해졌다. 당파적 독설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애국 충정과 더불어 지지 세력에 화끈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위해 독설을 구사한다. 적대 세력을 약 올리고 화나게 하는 독설일수록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정ㆍ관계의 독설가들은 자신의 독설이 비판의 대상이 되면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진의를 언론이 맥락을 제거하는 등의 방법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매번 억울하게 당할 걸 뻔히 알면서도 독설을 계속하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독설을 기사 제목으로 뽑기에 바쁜 언론의 행태를 규탄한다 해도, 특정 단어 하나가 말과 글의 전체 내용과 흐름을 능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부부싸움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 100명을 붙잡고 물어보라. 메시지 때문에 싸운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스타일 때문에 싸움을 한다. 잘못 선택한 단어 하나가 상대편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한다.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 나서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선의를 아무리 강변해봐야 소용이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터넷 시대 이전부터 싸가지가 바로 메시지였던 셈이다. 이제 달라진 게 있다면 사회적 차원에서의 싸가지 재평가다. 과거엔 사람의 싸가지 있고 없음을 따지는 건 주로 보수적 인간관의 표출이었다. 기존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그 질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즐겨 쓰던 말이 바로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탈(脫)권위’가 주류 문화에 근접한 오늘날 싸가지는 점차 기본적인 예의와 성찰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또 그렇게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싸가지 없음’의 저항성은 이젠 폭력성으로 변질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이 아닌 폭력의 문제

메시지의 본질에 집착하는 본질주의자는 싸가지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싶겠지만, 그건 기능을 디자인보다 우선시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발상이다. 인터넷은 메시지 본질의 성격을 바꿔놓은 혁명이다. 독설로 구경꾼들의 관심과 주목을 쟁취하고 지지자들의 참여와 혈압을 올리려는 방식의 손익 계산도 다시 해볼 일이다.

장사 하루 이틀 하고 말 게 아니잖은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싸가지를 갖춘 토대 위에서 메시지로 승부를 걸어야지, 싸가지가 없으면 그게 바로 메시지가 되고 만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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