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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제약회사 횡포에 희귀병 환자들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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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제약회사 횡포에 희귀병 환자들 피눈물

입력
2005.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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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데그레이너씨(57)는 정든 직장을 떠나 직원 수 천 명의 큰 회사로 옮겼다. 두 살부터 희귀병인 고셔병을 앓아 온 아들 브라이언(17)의 약 값 때문이다. 1년에 36만 달러(3억 6,000만원)나 하는 약 값 대부분을 직장 의료 보험으로 충당하는 그는 더 많은 치료비를 보조하는 기업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걱정이다. 언제 회사가 그를 해고할지, 보험측이 환자부담율을 올릴지 모른다. 더 큰 걱정은 약값 인상이다.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아무런 규제 없이 약값을 올릴 수 있다. 데그레이너씨는 “제약회사는 보험이 다 부담한다면서 약값을 올리지만, 직장은 갈수록 환자 가족의 부담 비율을 올리고 있다”며 “나 같은 직원은 해고 1순위”라고 울분을 토했다.

희귀병 치료약 제조 회사가 떼돈을 벌고, 대안이 없는 환자들이 허리가 휘는 슬픈 사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희귀병 치료약은 260가지.

일부 회사는 한 개 품목으로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 국가들은 법으로 이들의 폭리를 보호하면서 환자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미국 희귀병 환자들은 1년에 평균 60만 달러의 약값을 쓴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돈을 쓰는 ‘평생 고객’이 전 세계에 널려 있다.

제약회사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미국의‘희귀병 치료약 법(Orphan Drug Act)’. 약 개발을 촉진하자는 취지로 1983년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희귀병 치료약’이라고 지정하면 회사는 7년 동안 시장 마케팅 독점권을 갖는다.

더구나 다른 회사가 제너릭(특허권 없이 만들 수 있는 같은 효능을 가진 복제약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도 FDA가 좀처럼 승인하지 않는다. 제약회사는 덤으로 세금 50%를 연구개발비로 다시 돌려 받는다.

이들 회사는 유럽에서도 특권을 누린다. ‘하나의 시장 가격’을 추구하는 유럽이지만 희귀병 치료약 만큼은 나라마다 값을 다르게 메길 수 있다. 이 역시 약개발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이다. 더욱이 이웃나라에서 값 싼 제품을 들여오는 것(병행수입)까지 막아 독점이익을 보장해준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제약 회사는 정부, 의사단체, 심지어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에까지 로비를 펼쳐 경쟁 약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막아 버린다”고 지적했다. IHT는 또“가난한 나라는 희귀병 치료약 수입을 아예 포기하는 추세”라면서 “심지어 프랑스나 스웨덴 등 선진국도 약값 부담을 견디다 못해 지원 비율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불가리아 의대 학장 조르지 미하이로프 교수는 “다국적 회사의 횡포를 막는 길은 각국 정부가 공동 대응하는 길 뿐”이라면서 “공동 가격제 도입, 병행수입 허용 등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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