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답십리 3동에 사는 이모(36)씨가 13세 연상의 남편 김모(49)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 것은 16세이던 1985년. 이후 혼인신고를 하고 딸(15) 하나에 아들 둘(14ㆍ12)을 낳았지만 직업도 없이 술만 마시는 알코올중독자 남편 때문에 이씨의 생활은 팍팍하기 그지 없었다.
이씨는 남편을 대신해 보험설계사 등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자녀들을 모두 키울 수 없어 큰 딸은 지방 보육원에 보내야 할 만큼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남편은 간혹 들어오는 막노동 일마저 술에 취해 나가지 않은 채 주먹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이씨에게 더 큰 불운이 닥친 것은 올 7월. 난소암 판정을 받고 서울의료원에서 1차 수술을 받은 이씨는 보험설계사마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밀진단 등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지만 의료보험료까지 상당액 체납돼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2개월 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돼 동사무소로부터 받기 시작한 45만~47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며칠 전 이씨는 큰 맘 먹고 2만2,500원의 ‘거금’ 을 들여 아이들에게 먹일 돼지고기 3근을 샀다. 그러나 남편은 냉장고에 넣어둔 고기를 몰래 가지고 나가 소주와 바꿔 마시고 15일 0시46분께 만취 상태로 돌아왔다. 격분한 이씨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씨를 넘어뜨린 후 미리 준비한 2㎙ 짜리 줄로 목졸라 살해했다.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16일 이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사정이 딱하지만 사전에 범죄를 준비하는 등 범행의도가 확실해 구속영장 신청이 불가피하다”며 “이씨가 구속될 경우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구청과 동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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