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검찰에 구속된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각각 ‘햇볕정책의 전도사’ ‘법조계 호남인맥의 대부’로 불렸지만 불법도청을 묵인하거나 지시한 혐의로 결국 불명예를 안게 됐다.
임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최고봉이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거쳐 통일부 장관을 2차례나 역임한 뒤 1999년 12월부터 2001년 3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측과의 막후 협상을 책임졌고, 한반도 정세가 경색됐던 2002년 4월에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담판에 나서기도 했다.
정상회담 이듬해인 2001년 8월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의 김일성 주석 생가 방문 사건 때문에 국회에서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로 다시 중용됐을 만큼 김 전 대통령은 그의 유연한 대북관과 뛰어난 협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신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1,2차장을 거쳐 2001년 3월부터 2003년 4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냈다. 호남 출신이면서도 5, 6공화국 시절부터 검찰의 요직을 거치면서 특수 수사통으로 명성을 떨쳤다.
대검 중수부 과장 시절 역대 최대의 권력형 금융사기 사건이었던 이철희ㆍ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해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 초기 사정 당시 슬롯머신업계 대부인 정덕진씨와의 친분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이후 대검 중수부장, 법무차관, 광주고검장으로 승승장구했으며 특히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는 법조계 호남인맥의 대부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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