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계의 투자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국내 증권사와 관련단체, 기관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자본시장 선진화가 병행되어야 이 같은 변화의 분위기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금이 선진화의 적기”라면서 해결과제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정책 개편해야 은행 중심의 정부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황건호 증권업협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은 산업자본 조달지원이라는 공공적 기능에서 후퇴해 소비자금융 위주의 단기 업적주의에 치중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국내 금융시장은 여전히 은행이 주도해가고 있고, 이를 중심으로 정책이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 증시 등 부문간 균형을 맞춰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본시장 선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경제성장도 한계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홍성일 사장은 “은행은 보험, 펀드상품 판매 등 업무영역에서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며 “안전위주의 보수적인 조직에 대한 과도한 지원은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 자본시장의 선진화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사장은 “은행은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를 받는 등 과보호 속에 있다”며 “환란이후 대다수 은행의 주인(대주주)이 외국인으로 바뀐 상황에서 과거처럼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규모 키워야 증권사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이미 투자은행(IB)화한 외국계 대형 증권사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모 확대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대우증권 손복조 사장은 “메릴린치가 얼마 전 국내에서 수천억원대의 유망 자산을 사들였는데 국내 증권사들은 투자가치를 알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기껏해야 1조원대의 자기자본으로는 외국계와의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현대증권 김지완 사장은 “국내 반도체, 자동차업체들이 세계일류 기업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밑바탕에는 엄청난 자본력이 깔려있다”며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현재 1조~1조9,000억원 수준인 자기자본을 3조~5조원 정도로 끌어올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투자자ㆍ전문인력 교육 필요 우리투자증권 박종수 사장은 “최근 외국계 투자은행 대표에게 국내 증권사들의 취약점에 대해 물었더니 ‘리스크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많지 않은 자본(자기자본)조차 제대로 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의 리스크관리 기법이나 노하우가 떨어지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증권 김 사장도 “국내 증권사 인력의 전문화 수준은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며 “사람투자를 너무 소홀히 한 결과 경쟁력 있는 인력들이 외국계로 빠져나갔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또, “투자자들도 주식투자의 결과가 ‘대박’ 또는 ‘거덜’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깨야한다”며 “주식투자는 투기가 아니라 저축과 같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증권 홍 사장도 “개인들이 대박심리 대신 분산투자 및 가치, 장기투자 마인드로 투자에 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시장규제 철폐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필요한 과잉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투자증권 홍 사장은 “골프장 회원권 값이 계속 치솟는 것은 일부 대기업들이 투자는 않고 회원권을 대거 사들이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대기업들이 거둔 수익이 자본시장에 투자되도록 이끄는 연결고리가 빈약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로, 규제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증권업계의 업무영역 및 취급상품 다양화를 조속히 허용해야 한다”라며 “특히, 비과세 펀드는 개인의 장기투자심리 확산과 자본시장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초석인 만큼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권업협회 황 회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순이익이 크게 증가했는데도 국민들이 느끼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크지 않은 것은 과실의 절반 가까이를 외국인이 가져가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과실을 우리가 따먹기 위해서라도 투자 및 자본시장이 육성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규제철폐 등의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자본시장의 장기적 안정성장을 위해서는 상장요건을 갖춘 공기업과 민간 우량기업들이 상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순 자산운용협회장은 “현재 10% 미만인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증권예탁결제원 정의동 사장은 “투자자의 권리행사 의식과 투명성 증대를 위해 주주총회에서의 전자투표제와 전자증권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투자증권 조왕하 사장은 “고령화와 저금리, 증시?유동성 등을 감안할 때 지금이 자본시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정부 정책이 제대로 수립돼 추진된다면 자본시장의 선진화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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