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세 분 선생님을 생각하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세 분 선생님을 생각하며

입력
2005.11.15 00:00
0 0

요즘 교원평가제 문제를 보면서 부쩍 세 분 선생님 생각이 난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설(薛)자 광(光)자 희(熙)자 담임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자 국어 담당이셨던 오(吳)자 군(君)자 자(子)자 선생님(당당한 함자와는 달리 여성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자 정치경제 담당이셨던 김(金)자 교(敎)자 정(政)자 선생님.

그 이후로는 유감스럽게도 “선생님!” 하고 부를 만한 분을 만나지 못했다. 설광희 선생님은 그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인자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오군자 선생님은 제자가 잘못되지 않도록 방학 때 친히 편지까지 써 보내며 걱정해 주시곤 했다.

김교정 선생님은 대입 예비고사장 앞에서 기다리다 “네가 체력장만 잘 봤어도 총점이 9점이 올랐을 게 아니냐, 이 바보야!”하고 한탄하실 만큼 못난 제자를 애틋해하셨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대화가 기억에 생생하다. 고 3 때 교무실에서 진학지도를 받을 때였다. “네 친구들 다 과외 하는데 넌 안 하냐? (돈이 없다는 건 알지만) 하는 게 그래도 나을 텐데…. (성적표 등을 들춰보며) 지금은 괜찮지만….” “과외 선생이 선생입니까? 그건 교육이 아닙니다. 과외지. 과외 못해서 대학 못 간다면 가지 말아야지요! 그런 사람들한테 뭘 배우겠어요?” “아니, 이 놈아…. 세상이… 그런 게 아니야.” “선생님 같은 분한테 제대로 배우는 게 공부입니다.” “어허, 그 놈 참.”

나중에 안 일이지만 1970년대 말에는 과외가 참 심했다(혹여 과외와 관련된 독자가 계시다면 당시 어린 학생 나름으로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런 선생님들 덕분에 이제까지 그런 대로 남에게 별 폐 안 끼치고 아이들 키우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가 싶다. 반면에 학생들이 뒤에서 성함을 그대로 부르며 놀리고 욕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대개는 어린 학생들 특유의 ‘선생님 놀려먹기’였지만 진짜 나쁜 교사도 있었다.

물론 그런 유형은 어느 직종에나 있다. 무능하거나 비인격적이거나 둘 다인 경우 말이다. 교원평가제에 대해 세 분 선생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반응하실까? 또는 그 분들이라면 평가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까?

굳이 반대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스승으로서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기꺼운 일은 아니겠지만 주변에서 ‘정말 내 자식 저런 사람한테 맡기면 안 되겠다’ 싶은 동료 교사를 아주 가끔은 보셨을 테니까. 게다가 지금은 어지간한 나라라면 대통령, 국회의원, 최고경영자, 회사원, 공무원, 교수, 운동선수, 기자 할 것 없이 각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통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가 아닌가?

그 다음, 평가 결과는? 두 가지일 것 같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평가까지 포함되는 제대로 된 평가라면 상당히 좋았을 것이고, 관리직이나 동료 교사들만의 평가라면 썩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어떤 경우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모든 교사가 세 분 선생님 같다고 해도 평가는 필요한 시대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조직은 없다. 교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이광일 기획취재부장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