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장 임동원ㆍ신건 씨에 대해 도청범죄를 주도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정치적 파문을 불렀다. 검찰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도청범죄의 중대성에 비춰 책임을 엄중하게 묻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측은 두 사람의 책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여기에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구속은 부당하다거나 심하다고 거들고, 한나라당까지 정치적 이용을 경계하는 등 논란이 많다.
이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검찰이 이번 사건을 국민적 이해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강조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정원이 각계 인사를 상습적으로 도청한 것은 곧 불특정 다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범죄라는 규정은 헌법정신에 비춰 당연하다. 따라서 이를 엄정 수사해 처벌하는 것은 국가기관의 도청범죄 근절을 기약하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런 맥락에서 검찰이 조직 특성상 도청범죄에 가담한 정도가 가장 무겁다고 판단한 전직 국정원장을 구속 수사하려는 것은 시비할 여지가 별로 없다고 본다.
이들이 도청을 지시하거나 도청자료를 일상적으로 활용했다는 옛 수하들의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부인하고 증언 번복을 강요한 의심까지 받는 마당에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불구속 원칙과 형평성 또는 과거 업적을 거론하거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김 전 대통령측이 DJ의 신망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도청 근절을 거듭 천명한 고상한 뜻을 간직하고 있다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을 지나 전직 국정원장 들의 무고함과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지레 강조하는 것은 DJ의 명예를 오히려 해친다고 본다. 인권 대통령의 명망에 걸맞은 대응이 아쉬운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수사내용은 제쳐둔 채 구속영장 청구를 시비한 것은 다분히 위선적이다. 정치적 계산이 무엇이든 간에, 법원이 구속적부심에서 가릴 증거인멸 우려 등을 편한 대로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부당하다. 정부여당이 이런 식으로 구체적 사건마다 구속, 불구속의 당위성을 판정하다가는
쉽게 자기모순에 빠질 것이다.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이번에는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 이를 잘 일러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