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 세계사를 보면 기가 막히게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진보 정당들이 집권한 역사가 있는 유럽이 보여주듯이 진보세력도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지난해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과 관련해 ‘쓴소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제일 먼저 당부한 것이 부패였다. 불행히도 이 우려는 1년 만에 사실로 나타났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아직 부패하지 않았고 국회의원들이 세비의 상당액까지 당에 내며 모범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유기적 관계에 있는 민주노총의 비리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10ㆍ26 재선거에서 텃밭인 울산 북구마저 내주고 말았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그런 것이 민심이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재선거 패배가 아니라 진보세력의 중심 진지인 민주노총의 도덕적 위기이다.
●지도부 사퇴 요구 15명 해고
얼마 전부터 줄줄이 터져 나온 민주노총의 비리는 일종의 ‘기획 수사’이다. 이 지면의 ‘오비이락의 정치’라는 제목의 칼럼(3월 29일자)에서 지적했듯이, 군사독재 시절 선거 때만 되면 터졌던 간첩사건처럼 정부가 비정규직법안 개정 등 반노동적 정책을 추진하면서 걸림돌인 민주노총을 고립시키기 위해 그동안 모아놓았던 비리 정보들을 하나씩 터트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민주노총 소속 단위 노조들이 탄압의 빌미인 비리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특히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는 단위 노조가 아니라 중앙지도부의 2인자가 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민주노총의 도덕적 파탄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수호 위원장 등 지도부는 강승규 사건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법안 저지투쟁 등이 한고비를 넘긴 뒤 책임을 지겠다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사무국 활동가 15명이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며 사퇴서를 제출했고 이 압력으로 이 위원장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가 꾸려졌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 위원장이 주동자 3명을 선별해 사표를 수리했고 12명에 대해서도 다음날까지 출근하지 않을 경우 사퇴 처리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선별 처리된 3명에 대한 의리 때문에 출근하지 않자 사퇴 처리함으로써 사실상 15명을 해고했다.
물론 이는 본인들이 낸 사직서를 수리한 것이므로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소위 민주노동운동의 총지휘부가 조직 발전을 위해 사퇴서를 낸 활동가들을 기업이 애용하는 주동자 선별 해고라는 노동탄압 방식을 그대로 모방해 사실상 해고한 것은 민주노총 10년 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조치였다.
개인적으로 이 위원장이 복수심에서 이들의 사퇴서를 수리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 15명이 이 위원장을 비롯한 다수 온건파의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을 비판해온 강경파라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이들을 제거해 차기 집행부가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진하는데 장애가 없도록 이 위원장이 악역을 맡아 일종의 ‘논개 작전’을 편 것처럼 보인다.
●반대파 제거 기회로 악용
그러나 이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온건파와 강경파 중 누가 옳으냐의 문제와 상관없이 조직의 발전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낸 사직서를 반대 세력 제거의 기회로 활용했다는 것 자체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얼마나 도덕적 파탄 상태에 빠져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군말이 필요 없이 비상대책위는 이들을 즉각 복직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인적으로 민주노총에 보내온 지지를 거두는 한편 진보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지지철회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 15명의 처리 문제는 민주노총이 재생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