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연평균 5% 이하의 저성장 시대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고, 노동생산성에 변화가 없다면 2010년 이후로 2% 이하의 초(超)저성장 시대에 진입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저소득층-고소득층 혹은 영세기업-대기업 근로자 간에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청년 비중도 1996년의 36.7%에서 2003년의 25.2%로 급격히 감소하여 대기업에 취직하는 젊은이가 ‘가문의 영광’인 시대가 되었다.
노동 시장의 환경은 이토록 급변하는 반면 우리의 노사 관계 모습은 여전히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사건은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 불투명성이 아직도 심각한 수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불투명한 경영이 노조에 인질 잡힐 경우 작업장은 생산성 제고에 몰입하기보다는 좀더 많은 몫을 쟁취하기 위한 네거티브 정치 게임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불투명 경영은 불투명 경영→대립적 노사 관계→기업 부실화→대립적 노사관계라는 악순환의 고리의 초기 조건으로 작용하며, 인사 관리 담당자는 미봉적 합의에 급급하게 되어 공정한 인사 관리 원칙이 무너지게 되고 노사 관계는 파행으로 가게 된다.
노동조합의 연이은 부정부패 사건의 상당 부분은 기업의 경영 불투명성과 맞물려 있다. 불투명한 경영자와 부정한 노동조합 간의 담합 비용은 고스란히 근로자, 주주 그리고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불투명한 노동조합은 필연적으로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비자금이 필요하고 비자금의 지원을 받은 세력이 구조화되면서 대다수의 조합원의 의사에 반하는 비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쉽게 된다.
현재와 같이 불투명한 노사 관계 하에서 2007년에 도래하는 복수 노조 허용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복수 노조 시대에 노사가 정당한 노동 행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노사 관계의 불투명성, 부정부패 문제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사전 예방하는 차원에서 우리의 노사 관계는 환골탈태해야만 하며, 이를 위해 몇 가지 개혁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부터라도 기업은 비자금, 분식회계와 같은 불투명 경영 관행을 끊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에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도덕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당수 국내 기업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특혜금융과 정경유착 등 비판의 표적에서 벗어나기 힘든 과거가 드러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드러나는 정치자금이나 뇌물 사건도 그런 예에 해당된다.
둘째, 노동조합도 민주적, 생산적 노동조합으로 개혁해야 한다. 민주적 의사결정제도 확립과 재정과 활동의 투명성 확보는 시급한 선결 과제이다. 또한 비리와 집안 싸움으로 얼룩진 상황과 환경 변화 앞에서 적응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소모적인 임금 투쟁과 사용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고용 안정 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적극적 프로그램을 제안해야 한다.
셋째, 정당한 노동행위의 책임은 사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 모두에 있다. 복수 노조가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노ㆍ노(勞ㆍ勞) 간 공정 경쟁을 규율하기 위한 기제가 불필요하였으나 이제 노조를 부당하게 탄압하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부정한 노조를 규율하기 위한 노동법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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