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두원면 예동마을. 주민 37명 가운데 95%인 35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마을 주민의 평균 나이는 76세, 가장 젊은 이가 내년 환갑을 바라본다. 자식들을 모두 도시로 떠나보내고 어렵게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에게 외로움과 병은 이제 친구처럼 느껴진다.
MBC가 창사기념 특집으로 예동마을의 한해살이를 기록한 2부작 HD 다큐멘터리 ‘노인들만 사는 마을’(연출 윤미현)을 20, 27일 밤 11시25분 방송한다. 한 마을을 1년 넘게 가까이서 관찰하며 일상을 하나하나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흔치 않을 뿐 더러, 사라져 가는 농촌 공동체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 눈길을 끈다.
예동마을에서 젊은 일손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70, 80대 노인들이 굽은 허리를 힘겹게 움직여가며 품앗이를 하는 도리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부녀회장 진금자(70) 할머니가 마늘을 심을 때는 82세 송순애 할머니까지 거들고 나섰다. 진 할머니는 “염치가 없지만 일손이 워낙 없어 여든 노인에게 부탁했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일손이 부족한데다 나이 들면서 갈수록 힘에 부쳐 빈 채로 묵혀둔 논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며 한숨을 짓는다.
정점엽(87) 할머니는 “돈 한 닢 없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아들이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집과 전답을 모두 날린 탓이다.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사는 할머니는 죽을 날만 기다린다고 한다. “얼른 죽어버리면 좋겠어. 진짜 편한 사람은 안 죽고 싶다고 해.”
벚꽃 피던 봄날, 마을회관 앞에서 진금자 할머니의 칠순 잔치가 열렸다. 할머니와 50년을 함께 한 김경근(71) 할아버지는 첫날 밤 신부 얼굴이 너무 못생겨 1주일을 혼자 울었다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운 하루였다.
내년이면 마을 최고령자인 박순심 할머니가 아흔을 맞고, 그의 며느리이자 최연소자인 송맹심 할머니도 환갑을 맞는다. 어디나 찾아드는 겨울이지만 예동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추위는 더 매섭다. 속절없이 세월이 흘러 하나 둘 떠나고 나면, 마을마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탓이다. 제작진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날 수 없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과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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