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의 한 공사판 사진. 한창 짓고 있는 건물들이 환영처럼 희미하게 여러 겹으로 겹쳐보인다. 혹 착시(錯視)인가 싶어 바짝 다가가 보아도 틀림없이 여러 겹 화상이 무질서하게 찍혀있다. 독일출신 미하엘 베셀리가 2년여에 걸친 장시간노출로 찍어낸 작품이다. 통독 이후 베를린의 변화를 시간의 흐름으로 담아냈다.
한국 독일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각국의 사진 작가 20명이 ‘제2회 서울포토트리엔날레’에서 작품으로 만났다. ‘사진영상의 해’였던 1998년 시작된 이 전시회는 당초 이름대로 3년마다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미뤄지다 7년 만에야 ‘초월ㆍ횡단ㆍ변이(transit)의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게 됐다.
전시 작품들에는 한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를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순간들이 담겨있다. 특히 촬영 방법이나 주제에서 작가의 개성이 도드라졌다. 어떤 이는 도시의 변화를, 어떤 이는 사람들의 이주를, 역사 속 하나의 현상이 현실에 드러났다가 과거가 되는 생성과 소멸을 제각기 다르게 포착했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영연방의 웨일즈에 거주하는 폴 시라이트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 풍경사진을 찍었다. 미국이 2001년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거부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그 후에 찍은 그의 사진들 속에는 전쟁의 흔적이 내재돼 있다. 이와 유사한 풍경을 강용석이 보여준다. 그는 미군의 쿠니 사격연습장과 폭격장인 매향리를 촬영했다. 예고 없는 미군의 폭격에 의해 인근 마을 주민들이 피해는 입는 일이 다반사였던 이곳을 흑백사진으로 처리했다. 폭격장의 불발탄과 그것들이 꽂혀 있는 웅덩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표현한다. 컬러와 흑백 작업이라는 차이 외에는 폴 시라이트와 강용석은 풍경에 접근하는 방식과 바라보는 대상이 유사해 흥미롭다.
흑인으로는 처음 뉴욕타임즈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진 체스터 히긴스 주니어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그는 70년대부터 전세계에 흩어진 흑인들의 생활상을 기록하기위해 26년간 30개국을 돌았고 특히 아프리카는 17번이나 방문해 촬영했다.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과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의 문화적 공통점을 추적하고 고유의 흑인문화를 사진으로 찍는데 역점을 뒀다.
서양의 남성과 동양의 여성, 남성 커플로 구성된 김옥선의 작품에는 서구공간 속에 동양여성이 이질적으로 등장한다. 얼굴을 제외하고는 서구문화 속에 완연하게 스며있는 동양인들의 무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국 이민 2세 작가 수킴.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동시대 군상들을 공항에서 상상의 인물을 기다리는 연극적 상황으로 연출해 작품을 만들었다. 역사적 배경이 상이한 인종이 접촉하는 공항은 복합적인 관계가 교차하는 특수공간.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자와 보이지 않는 방문자는 자아와 에고를 상징한다.
홍순태와 으젠느 앗제는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 계획에 의해 변모하는 서울과 파리의 풍경을 기록했다. 최근 복원된 청계천의 옛 복개작업현장과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고가도로의 건설현장이 담긴 홍순태의 작품은 서울의 역사적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외에 한국과 독일의 대표적인 예술가로서 백남준과 조셉 보이스의 모습을 담은 임영균과 베르너 크뤼거의 ‘페이스 투 페이스 (Face to Face)’가 함께 열린다. 12월18일까지.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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