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결국 추억으로 남는가.’
1986년부터 4년 7개월동안 10명의 부녀자가 처참하게 살해된 경기 화성시 연쇄살인 사건. 14일이면 9차 사건의 공소시효도 끝난다. 남는 건 내년 4월 2일이 공소시효인 10차 사건. 하지만 10차 사건은 9차와 범인의 DNA가 다른데다 모방 범죄의 요소가 많아 진범일 가능성이 낮다. 결국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이 사건의 진범이 14일이 지난 뒤에 유유히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를 법정에 세울 수 없다.
때문에 네티즌을 중심으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지난 8일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단죄하자’는 제안이 올랐고, 6일만에 네티즌 7,500여명이 댓글을 다는 등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공소시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짧다고 주장하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지난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 독일의 살인죄 공소시효는 30년, 미국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연방 법에는 살인의 공소시효를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54년 형법 제정 당시 15년으로 정해진 후 한번의 개정도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범죄는 날이 갈수록 흉악화ㆍ지능화하는데 관련 법은 수십년째 제자리”라며 “하루 빨리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살인의 최고형은 사형인데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범인이 버젓이 나타나더라도 손끝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살인의 공소시효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열린 우리당 문병호 의원 등 10명이 지난 8월 17일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를 일괄적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현재 15년에서 20년으로,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10년에서 15년으로 각각 5년씩 늘리는 게 주요 내용. 문 의원 측은 “공소시효의 취지가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훼손돼 범인처벌이 힘들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수사기관의 증거보존 능력이 향상됐기 때문에 증거훼손으로 인한 수사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공소시효 연장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많다. 대한변협 하창우 공보이사는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15년으로 정해진 건 일본법을 차용했기 때문”이라며 “일본마저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린 마당에 굳이 15년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소시효 연장이나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려대 법대 배종대 교수는 “범죄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회 일원으로 돌아와 안정적인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며 “여론에 밀려 졸속으로 법을 개정하기 보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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