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지식의 가치를 주창하며 현대 경영학의 이론적 틀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박사가 11일 타계했다. 향년 95세.
드러커 박사는 경영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경영과 기업에 관한 탁월한 식견을 토대로 미래 사회의 흐름을 예측한 시대의 석학이다. 저술가로서, 컨설턴트로,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말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인 그는 경제학의 하부이론에 불과했던 경영학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또 이를 사회 현장으로까지 확장한 ‘행동하는 학자’의 전형으로 꼽힌다. 토지와 노동을 중시하는 고전적 인식 틀을 거부하고 대신 인간을 가치창출의 중요한 요소로 제시해 한 때 ‘몽상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87년 10월 거품논란이 한창이던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그는 시장붕괴의 원인을 경제적 이유가 아닌 도덕성의 타락에서 찾았다. 그는 “지난 2년간 욕심에 가득찬 돼지들이 게걸스럽게 이득을 취하는 모습은 정말 역겨운 광경이었다”며 인간성과 도덕이 실종된 투자행태를 통렬히 비판했다. 사람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론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굴지의 대기업에서 경영이론으로 채택됐다. 카리스마를 중시하던 당시 최고경영자(CEO)의 덕목도 ‘동기와 비전을 얼마나 제시할 수 있느냐’로 바뀌었다.
시대정신에 대한 그의 통찰력은 기업 뿐 아니라 각계 지도자들에게도 큰 족적을 남겼다. 윈스턴 처칠은 파시즘을 날카롭게 비판한 그의 첫번째 저서 ‘경제적 인간의 종말’(1939년)을 읽고 이에 감동해 신문에 직접 서평을 기고했다. 대기업에 변혁의 동기를 제공한 두번째 저서 ‘산업적 인간의 미래’(1942년)는 제너럴모터스(GM) 경영진의 열독서가 됐다. GM은 드러커에게 회사의 내부자료까지 제공하며 자문하기도 했다. 1997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지가 드러커를 커버스토리로 다뤘을 때 당시 제너럴일렉트릭(GE)의 CEO였던 잭 웰치는 “드러커는 사고(思考)하게 만들어 준다”고 평가했다. 인텔의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는 “드러커는 시정잡배와 같은 경영학자들과 달리 정교하면서도 명료한 논리로 무장한 독보적 존재”라고 극찬했다.
1909년 오스트리아 빈 출신인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7년 미국으로 건너가 43년 미국이 주도한 마셜플랜의 고문으로 참여했고 이후 뉴욕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면서(50~71년) 경영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2003년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클레어몬트대 드러커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했다. ‘경영의 실제’ ‘단절의 시대’ ‘미래 경영’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그는 지난해 94세의 나이로 자신의 35번째 저서를 완성하는 학문적 열정을 쏟아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도리스와 네 자녀가 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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