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투자자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큰 변화 중 하나는 투자대상이 국제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자위험을 감수하면서 해외상품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인도나 중국 등 해외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하는 개인이 늘어나는가 하면, 중국의 부실채권에 투자하는 금융회사도 생겼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들이 한국을 대상으로 했던 투자기법을 이제 우리 금융회사와 개인들이 벤치마킹해 써먹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직은 경제발전단계가 낮은 국가에서 시험해 보고 있는 정도의 초보 수준이다.
개인들의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해외비중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변화를 웅변한다. 인도와 중국, 동유럽, 일본 등 해외 펀드에 투자한 국내 자금은 9월말 현재 7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펀드오브펀드’에 들어간 자금은 10월말 현재 3조5,000억원으로 10개월 사이 75%나 증가했다. 펀드오브펀드는 해외의 단일 펀드(뮤추얼펀드) 차원을 넘어, 다양한 펀드들로 구성된 혼합 상품에 재간접 투자하는 형태다.
금융회사들이 해외 자본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도 투자 국제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증권은 국내 처음으로 중국의 농업은행 자회사인 창청(長城)자산관리공사로부터 2억달러(장부가액) 규모의 부실채권을 인수, 지난 7월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달러표시 자산유동화증권(ABS) 660만달러어치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증권 김지완 사장은 “지금까지 증권업계가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새 영역에서 성과를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자평했다.
이 ABS를 인수한 회사 중 하나인 KTB네트워크(벤처캐피털업체)는 최근 중국현지 투자기업 2개사를 각각 나스닥과 홍콩 증시에 상장시켜 1,000만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최근에는 자산관리공사(KAMCO)가 아시아권 국가들의 부실채권 인수를 추진하는 등 금융회사들의 해외 투자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외환위기와 대우사태, SK글로벌사태 등을 겪으면서 국내에서는 극단적인 위험 회피, 안전제일주의 경향이 확산됐다. 이는 금융계도 마찬가지여서, 리스크 ‘관리’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해야 할 금융회사들이 조금이라도 위험이 있는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리스크 ‘회피’ 에 안주하는 풍조다.
그런 사이에 외국인들은 국내 구조조정 기업들을 헐값으로 사들여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투자를 외면하고 확정금리상품만 선호하는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주식을 시가총액의 40% 수준까지 사들여 매년 대규모의 배당금을 받아가고 있다.
이런 안전지상주의와 리스크회피 심리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들어 투자자들 사이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개인들의 해외 투자가 본격화하고 있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은행 저금리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 리스크를 회피하기만 해서는 원하는 수익을 얻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해외 펀드 투자는 국내 투자보다 정보가 훨씬 부족해 위험이 상존하고 환율변동 등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달러화 기준으로 수익이 났다 하더라도 원화로 바꿀 경우 환차손을 크게 입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해외 투자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 원칙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이 많다. 대한투자증권 남명우 부장은 “해외 펀드에 가입하면 우리나라 증시나 채권시장이 좋지 않을 경우에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국회의원은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해외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된 금액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국부 유출’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제 해외 투자가 무조건 국부 유출이라는 생각은 접을 시기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히려 우리나라도 해외에서 론스타나 소버린처럼 대박을 거둘 기회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물론 탈세 등으로 현지 국민에게 도덕적 반감을 불러일으켜 다음 투자기회를 놓치는 일까지 배울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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