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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호주 국제변호사 앤 겔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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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호주 국제변호사 앤 겔리거

입력
2005.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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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시대, 인간은 국경을 넘어 대륙과 해양을 종횡무진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더 멀리, 더 빨리 이동하려는 세상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아직 상품과 자본의 무차별 자유이동에 비하면 인간=노동력의 이동에는 제약과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합법적 이주의 기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제한돼 있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필코 이주하려는 사람들을 노린 인신매매 시장은 종양처럼 커져간다.

초국가화ㆍ산업화하는 인신매매 문제의 국제적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제3차 국제인신매매 방지 전문가 회의'가 14~15일 여성가족부 주최로 한국에서 열린다. 기조연설을 할 국제 인신매매 문제 전문가 앤 갤리거를 13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미리 만났다.

_지금 이 시대 왜 인신매매가 문제인가.

“수십년 전만 해도 인신매매는 늦은 밤 거리를 걷던 여성이 어디로 납치된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제 인신매매는 산업이다. 다른 유사 산업과 마찬가지로 인신매매도 수요ㆍ공급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세계는 보다 저렴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세계화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다. 정확한 인신매매 시장의 규모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신매매를 전혀 겪지 않았던 국가들에서도 2년 전부터 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노동인구나 성산업 규모 등 각종 지표를 보더라도 인신매매가 확대일로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_인신매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나.

“인신매매는 누군가를 이주시켜 거래하는 ‘행위’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기, 강압 등 ‘수단’, 그리고 착취라는 ‘목적’의 3요소로 구성된다. 착취나 남용의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밀입국이나 불법 이주는 인신매매와 다르다. 그러나 법 집행기관에서 보면 그 의도와 목적을 분별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구별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인신매매는 성매매뿐 아니라 노동착취, 강제결혼 등과도 관련돼 있다는 점을 한국 독자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는 드러나지 않은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한 대가로 이뤄지고 있고, 이중 많은 수가 인신매매를 당한 경우다.”

_한국의 경우 해외 이주노동자나 이주 성산업 종사자, 결혼이민자 등이 굉장히 많다. 이들은 본인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한국에 온 사람들인데 인신매매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좋은 질문이다.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범죄 자체의 구성요건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신매매 얘기를 할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이는 성폭력 피해 여성이 야하게 옷을 입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는 생각과 마찬가지다.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길을 가다 강도에게 폭행당한 사람이 스스로 범죄를 당했다고 생각하든 안 하든 그 자체는 범죄인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서 온 것은 아닌지, 한국에 이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부터 살펴보고 인신매매에 대해 강경한 법 집행을 해야 한다.”

_한국에서는 성 착취와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성매매특별법을 시행한 후 외국으로 원정 성매매를 가는 남성들이 많이 늘었는데.

“내가 근무하는 태국에서는 섹스관광을 오는 한국 남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 곳에서 성매매를 막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의 양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웨덴, 호주, 독일 등 전 세계 남성들이 섹스를 위해 태국으로 온다. 태국은 성을 사려는 모든 남성들의 최종 목적지다. 때문에 ‘우리 나라는 법을 마련했으니까 할 일이 끝났다’는 식이 아니라 국가간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도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태국 등 한국 남성들이 원정 성매매를 다니는 국가와 단속ㆍ처벌 등에서 공조를 이뤄야 한다. 성산업은 폭발하고 있다. 이주, 인터넷, 관광 등으로 인해 성산업에는 국경이 없다.

앞으로 한국이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같은) 조치를 단행하고 그 결과를 관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5년 뒤에 성매매와 인신매매가 줄었는지, 한국에서는 없어졌지만 인근 국가에서는 성매매가 늘었는지 등에 대해 평가를 거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평가 작업도 태국 등 관계 국가와 공동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_성매매가 근절되면 인신매매가 줄어든다고 보는가.

“태국에는 성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어선이나 의류공장에서도 더 심한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일단 인신매매가 모두 성착취와 관련되어 있다는 선입견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인타타킴?돈을 벌기 위한 모든 산업과 관련되어 있다.

많은 아시아 사회가 서양 사회에 비해 성매매에 대해 너그러운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와 달리 아시아와 서양을 불문하고 성매매가 훨씬 쉽게 이뤄지고 있다. 이제 성매매는 범죄자에게만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 합법적인 기업에도 큰 이득을 주고 있다. 착취 안 하는 성산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성산업을 본 적이 없다.(웃음) 성산업이란 본질상 착취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산업은 대개 불법적으로 지하시장에서 이뤄져 당국이 관리ㆍ감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한국이 법을 제정했다 해도 성산업이 근절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순한 법 제정으로 완전히 해소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모든 것은 ‘책임’이라는 단어에 직결된다. 우선, 정부의 책임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책임은 누군가를 착취해 만들어지는 상품을 소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책임은 다른 인간의 권리도 존중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신매매 문제에 접근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다.”

_인신매매를 근절할 수 있는 해법은.

“소비자들이 싼 가격의 볼펜이나 핸드백을 원하는 한 인신매매는 계속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급 차원에만 주력해왔지만 이제는 수요 차원을 검토할 시점이다. ‘성산업이 없어지면 인신매매가 없어질 것이다’, ‘싼 가게가 없어지면 강제노동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렴한 성매매나 노동력을 추구하는 한 인신매매가 계속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주 노동자나 여성, 아동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외면하는 한 인신매매는 근절되지 않는다.”

_한국의 인신매매 문제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정부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어떤 국가는 인신매매 자체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대외적인 전시효과를 노려서가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논의를 출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국가를 보더라도 완벽한 공식이나 정답은 없다. 진심에서 우러난 작은 시도 하나가 중요하다. 그리고 법을 마련하고 난 뒤 성과를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평가하고 잘못된 점을 조정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_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5살 난 쌍둥이 딸의 엄마다. 국제변호사로 인신매매 분야를 7년 동안 다뤄왔지만 특히 출산 후에 이 문제가 남다르게 다가옴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고 할까.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들을 볼 때면 내 가족의 문제로 다가온다. 반대로 얘기하면 ‘나는 남자니까, 지역이 다르니까, 인신매매가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과 우리 모두가 공통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정리=문준모 기자 moonjm@hk.co.kr박선영기자

■ 앤 겔리거 변호사는

앤 갤리거(Anne Therese Gallagher)는 호주 출신으로 인권 및 범죄 분야 전문 국제변호사다.

동남아시아 인신매매에 대응할 사법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2003년 유엔과 각국 시민단체들이 함께 발족한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아시아 지역 협력 프로젝트(ARCPPT)'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다.

전 유엔인권고등판무관 메리 로빈슨의 인신매매 자문으로 일했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중남미 등 30여 개국에서 경찰ㆍ평화유지군ㆍ군인을 상대로 하는 교육을 담당했다.

1997년~2002년에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대학의 초빙교수로 재직했고, 아시아와 유럽의 대학에서 국제법, 국제인권법, 개발원조법을 강의했다.

호주 국립 대학교 국제법 석사, 네덜란드 우트레흐트 대학 철학 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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