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 오이도행 전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신길온천’이라는 역이 나온다. 당연히 동네에 온천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역 이름을 지을 당시 온천 개발이 한창이었으나 온천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이름만 남게 됐다.
온천욕을 즐기러 왔다가 되돌아가는 여행객이 많자 역에서는 ‘우리 역 근처에는 온천이 없습니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이런 코미디가 벌어져도 역 이름은 그대로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은 악명이 높다.
역에서 내려 서울대 정문까지 걸어서 45분 가량 걸린다. 입시철이면 지방에서 올라온 수험생과 학부모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고갯마루를 넘으며 “서울대가 어디 있어요” 묻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름이 비슷비슷해 혼동을 일으키는 역도 한 두개가 아니다. 구로역(1)-남구로역(7)-구로디지털단지역(2), 대방역(1)-신대방역(2)-신대방삼거리역(7), 뚝섬역(2)-뚝섬유원지역(7), 강남역(2)-강남구청역(7), 산성역(8)-남한산성입구역(8), 강동역(5)-강동구청역(8)… 시민들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지하철역 이름을 바꾸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노선도 교체 등에 최소 5,000만원 이상 드는 비용과 기존 역 이름에 익숙한 시민들의 혼란이 그 이유다.
▦새로 개관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 지하철역 이름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박물관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70m 떨어진 지하철 4호선 ‘이촌역’. 박물관측은 “박물관을 찾게 될 많은 국내외 관람객 편의를 위해 역 이름을 ‘중앙박물관역’으로 바꾸자”는 주장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이름을 완전히 바꿔버리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주민들도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 이름에 지역 표기 여부가 집값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주민들이 반대하는 속사정이다.
▦차선책으로 이촌역에 중앙박물관역을 병기하면 어떠냐는 방안이 제시되자 시는 가급적 병기를 안 하는 게 원칙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병기된 이름을 사용하는 역이 수십 개나 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대학들의 로비로 지하철에 붙여진 대학이름이 20곳이 넘는 것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지하철 역 작명원칙은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하루에 수만 명이 이용하는 우리 문화의 심장부를 알려주는 역 이름이 없다는 것은 씁쓰름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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