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름 동안 프랑스를 깊은 늪 속으로 빠트린 거대한 폭동의 물결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뿌리깊은 인종주의의 장벽에 가로막힌 채 직업도 구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빈민가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한 프랑스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 태만과 정책 실패가 낳은 결과이다.
근본적인 위기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이민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건과 경제 성장을 추진했던 프랑스 정부 정책의 결과였다. 소위 ‘영광의 30년’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프랑스 정부는 출산율 급감 등으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해외 식민지에서 조달했다. 이들은 정치의식이 높지 않아 프랑스인 노동자들과 달리 수동적이고 파업을 일삼지 않았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족을 이끌고 프랑스로 건너온 아랍계 노동자들은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 당시 ‘아르키(프랑스를 위해 싸운 알제리인)’란 이름의 용병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정부는 뻔뻔스럽게도 군대와 자국민만을 철수시키고 아르키들을 사지에 남겨 뒀다. 결국 10만여 명의 아르키들이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에 의해 학살됐다.
간혹 명령을 거부한 일부 지휘관의 배려로 살아남은 아르키의 가족들은 비록 합법적인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받았지만, 희생에 대한 어떠한 보상이나 혜택도 없었다. 그들은 더럽고 비좁은 수용 시설에 정착해야 했다. 가슴 속에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온 것은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의 몫이었다.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특별히 지어진 주거 시설은 도시의 중심지역과 철저히 분리됐다. 빈민가와 도심을 연결하는 대중교통도 전혀 없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주거 시설은 낡고, 황폐해졌으며 범죄 소굴로 전락했다. 1990년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빈민가 젊은이들이 “회색 벽 안에 갇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희망 없고 소외된 이들의 ‘잿빛 삶’은 더욱 깊어지고 악화했을 뿐이다.
현재 프랑스 정부의 폭동 대처 방식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사태 초반 야심만만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에게 사태 수습의 책임을 맡겼다. 그들은 공공연히 2007년 대선에서 시라크를 바꿔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르코지가 폭력 사태를 해결하지 못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기를 바랐다.
사르코지의 대응은 이번 사태에 단지 기름만 더 부은 격이었다. 그는 “인간쓰레기들을 진공청소기로 쓸어 버려야 한다”며 시위 청년들을 향해 모욕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인권에 대한 고려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폭동이 전국으로 번지자 사르코지는 폭동 확산을 조종하는 ‘조직적인 세력’이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주간 ‘르 까나르 앙셰네’의 클라우드 안젤리 편집장은 “폭동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조직화된 것이 아니다. 폭동 확산은 사르코지의 선동적인 말에 그들 자신이 목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연대의식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가톨릭 주교들은 얼마 전 이례적으로 사르코지를 직접 겨냥해 ‘두려움을 주입시키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57%가 사르코지 장관의 강경 대처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선동 정책이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폭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폭력을 불러올 뿐이다.
더그 아일랜드 미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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