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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안경의 에로티시즘' 안경, 보기 위해 쓴다고? 잘 보이기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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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안경의 에로티시즘' 안경, 보기 위해 쓴다고? 잘 보이기 위해 쓴다!

입력
200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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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에브라르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1만1,000원

안경이 신체 결함이나 미의 흠집 정도로 이해되던 때가 있었다. ‘안경잡이’니 하는 비하성 호칭이 상용됐고, 심지어 서양에서는 ‘악의 흔적’ ‘신의 형벌’로 치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시력 교정용 광학기구의 상징은, 하지만 18세기 말 그 도구적 유용성에 패션의 의미가 얹히면서 급변한다. 이제 안경은 필수품인 동시에 패션 액세서리로, 심지어 페티시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되고 있다.

‘안경의 에로티시즘’의 저자 프랑크 에브라르는 한 술 더 떠 안경이 “문화의 신화들과 연결된 마지막 끈을 쥐고 있”으며 “우리 문화의 의미와 지표 상실을 가늠하게 하는 징후”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신화와 소설, 영화, 미학ㆍ철학적 저술 등에 담긴 근거들을 질리게 들이대며 독자를 설득한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에 지적 탯줄을 댄 듯한 저자는 안경의 상징체계와 기호가치, 감춰진 코드 등을 흥미롭게 까발려낸다. 그에게 안경은 몸의 연장이다. 그 자체로 관능의 존재이며, 현대인의 집단 상상 속의 성(性), 에로스의 유희를 함축한 기호다. 잘 보기 위해 쓰는 안경은 이미 잘 보이기 위한 ‘심리ㆍ경제적 잉여투자의 대상’이며,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잘 보여지는 나의 이미지는 주체의 욕망을 형성한다. 봄(see)과 보여짐(be seen)의 전복! 모든 장신구가 몸의 구조를 이루면서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듯, 이제 안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학적 실존적 미학적 기호가 된다.

우리는 베일의 미학, 그 감춤과 드러냄의 관능적 긴장을 알고 있다. 안경 역시 자신의 단정치 못한 시선을 은폐하는 베일인 동시에 노출의 핑계다. 저자는 말한다. “시선을 감춤으로써, 육체를 비밀 속에 가둠으로써 절대적인 익명에 도달하기보다는… 호기심을, 장애물을 뛰어넘고 내밀함을 침범하려는 위반 욕구를 일깨운다”(48쪽)고. 안경이 관음과 노출을 근사하게 매개하는 것은, 시각적 대상과 망막을 격리하는 렌즈의 상징에 의한 것이다. 관음과 노출, 시선과 욕망의 관능적 떨림에는 주ㆍ객간의 단절, ‘소중한 거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문화적 소재들을 차용하며 지적 분석과 문학적 표현들로 논리를 전개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샷’에서 안경을 쓴 니콜 키드만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 관음의 기호를 찾는다. 우리가 콜라를 마시는 것은 ‘젊음’을 소비하는 것이라던 보드리야르의 전언처럼, 주변인들의 고독한 영혼을 그린 데니스 호퍼의 영화 ‘이지라이더’에서 할리데이비슨에 앉아 황량한 들판을 달리던 두 남자의 선글라스는 햇빛을 막는 것이 아니라 “바깥 세상과의 모든 유대”를 차단하는 상징이 된다.

안경은 이 밖에도 ‘신성 모독적 욕망을 일깨우는 학문적 편집광’이나, 천부의 감각을 훼손하는 불순한 필터라는 의미에서 중세 판화가들이 애용하던 ‘광인의 이미지’ 등에도 단골 기호로 등장한다. 여성 정치인 등에 안경을 씌워 “성적 유혹의 대척점에 있는 엄숙한 외관”을 부여하기도 하고 거꾸로 그 상징을 남성의 변태적 시선의 유희적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안경은 주체와 세계(옮긴 이의 표현을 빌자면 ‘나와 욕망’)를 매개하는 물건이다. 그것은 숱한 기호와 상징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현대의 신화를 창조하고 조종한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어떤 기호의 안경을 쓰고 있는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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