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1단계 6자 회담 이틀째인 10일 회담장에 파란이 일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날 오전 전체회의에서 미국이 지난달 자국 내 북한 기업들의 자산을 동결하는 등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9ㆍ19 공동성명 정신을 위배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김 부상은 단호한 어조로 미국이 상호 주권을 존중한다는 9ㆍ19 공동성명 이후에도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공동성명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핵 문제 논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날 전체 회의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으로 지칭한 데 대한 반응보다 강했다.
이에 따라 공동성명 이행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를 닦고자 했던 한국 등 나머지 참가국들의 구상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행계획 거중조정에 나서야 하는 중국은 부랴부랴 북측과 접촉,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북측이 회담 자체를 거부하는 등 극단적 조치를 취하지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회담장에서 회담 외적인 요소도 논의될 수 있다”며 “북측은 (자산동결조치 등이) 해결돼야만 회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북측 대표단은 격앙된 어조와는 달리 전체회의 이후 짐을 싸지 않았고 중국 및 한국 등과의 양자접촉, 수석대표 만찬에도 참석했다. 또 12일 전체회의도 확정되는 등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여 이번 사건이‘지나가는 돌풍’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북측이 돌연 이런 주장을 펴는 배경이 주목된다. 한 관측통은 “북측의 주장은 미국에 대해 더 이상의 대북 제재 조치를 하지 말라는 요구로 해석돼야 한다”고 말했다. 즉,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최소한의 신뢰기반을 마련하려면 더 이상의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대미(對美)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부시 2기 행정부가 들어선 뒤 북한 인권 및 탈북자 문제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더 강경해졌고, 금융 경제 제재마저 취해졌다. 북측은 여기에 큰 위기의식을 느낀 듯하다. 한 회담 관계자도 “김 부상의 이날 발언은 강하면서도 상당히 간곡한 톤이었다”고 말해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했다.
북한은 외화에 대한 미국의 통제강화를 생존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관측통은 “북한의 주장을 계기로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간에 신뢰가 더욱 구축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곧이 곧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별로 높지 않아 보인다. 6자회담의 전도가 이래저래 어두워지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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