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폐기 이행계획 마련의 기초를 놓고자 한 베이징(北京) 5차 1단계 6자회담은 11일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라는 새로운 걸림돌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걸림돌은 북미 양자협의의 기회를 낳아 북핵 문제 반전의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어 주목된다.
일단 회담은 어두운 분위기로 끝났다. 9ㆍ19 공동성명 이행 논의라는 본론이 아닌 미국의 대북 금융ㆍ경제 제재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회담장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차기 회담 일정 확정에 반대하면서 암운도 조성했다. 연내 개최가 물건너간 2단계 회담은 일러야 내년 1월에 열릴 전망이다.
심각한 대목은 북측이 문제 삼은 경제제재에 대해 미국이 양보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돈세탁, 대량살상무기확산, 위폐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차관보가 “그 문제는 범죄에 관한 사항으로 6자회담 의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자칫 이 문제로 회담이 장기간 표류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북미 양측이 물밑 타협으로 별도의 양자 채널을 개설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일종의 실마리를 마련한 것으로 여러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6자회담 차원 이외의 대북 접촉을 피해왔던 부시 미 행정부가 양자협의를 수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이 북한의 국제적인 검은 거래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이를 수용했을 수 있지만 분명 기존 방침의 변화다. 미측의 대북 주권 인정, 또는 신뢰 표시로 간주될 수 있는 이 조치가 북한의 유연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북핵 상황과 북미관계를 관리하는 좋은 기제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어온 북미가 직접 대화하면서 관계개선의 걸림돌들을 제거할 수 있다. 앞으로 진행될 양자협의는 기존의 뉴욕채널이 아니고 양국 외교ㆍ경제ㆍ금융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채널을 통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의 성과도 간과할 수 없다. 개략적인 이행안을 마련하고 북핵폐기, 북미관계정상화, 대북 경제ㆍ에너지 지원 등을 주제로 한 실무회의를 구성하자는 데 공감했다.
‘핵 연구활동 중단_핵무기 및 핵 생산 포기_핵비확산조약(NPT)복귀’라는 북한의 단계별 핵 폐기 방안이 제시된 점도 눈에 띈다.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이날 종결 발언을 통해 ‘시대정신에 맞춰 함께 전진하자’는 주역의 구절인 여시구진(與時俱進)을 인용,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해 핵 문제를 풀자”고 말했다. 북한이 부응할지는 향후 북미접촉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베이징=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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