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 지음 길 발행ㆍ1만8,000원
“지금까지의 도덕교육은 참된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를 위한 도덕교육이다.” 한국교육의 획일성과 전근대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극히 도발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지내고 학벌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논쟁의 한 가운데에 섰던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도덕교육의 파시즘’은 독재시대의 잔재가 남아있는 우리 도덕교육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저자는 현재 도덕 교과서의 내용과 체제는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이 만든 유산으로, 태생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이전의 도덕교육이 도덕철학과 반공철학의 어정쩡한 결합이었다면, 전두환 정권은 새로 설립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를 전초기지 삼아 도덕교육을 정권 안위를 위한 도구로 체계화 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국민을 가르치고 체제 순응적으로 만들겠다는 저의가 숨은 국민윤리에서 도덕으로 교과이름이 바뀌었지만 내용상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타인이나 국가적 폭력에 저항할 의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지나치게 예절교육을 강조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제도화 시키고 있다. 또한 사회는 조용해야 한다며 통합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이고, 개인의 권리를 위한 갈등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매도하는 것도 현 교과의 치명적인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이런 과거 국민윤리교육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지금의 교과는 “지극히 수구적이고 때로는 반도덕적이기까지 하다”고 비판한다. 현재의 도덕교육은 도덕이라는 당위론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인간을 정신적으로 노예화하는 장치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의 도덕교과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말하는 이상적인 도덕교육은 무엇일까. 그는 자유로운 인간성의 함양이 도덕교육의 근본이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자유, 생각하는 힘이 필수적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교과서 집필을 독점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며 집필권이 모두에게 개방되어 내용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현 도덕교육을 뿌리 채 거부하는 김 교수의 주장과 논리는 파격적이다. 독자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서는 극도로 과격하고 위험한 좌파적 시각으로 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가는 시대착오적 도덕교과체제의 문제점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김 교수의 우려와 달리 현 도덕교과의 내용은 교실 안에서만 통용될 뿐이다. 그것이 담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구태의연한 주장과 논리때문은 아니다. 도덕이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점수 따기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김 교수의 주장대로 교과서가 바뀌어도 시민사회에 걸 맞는 제대로 된 도덕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요컨대 우리 사회 ‘도덕’의 근본적인 문제는 도덕교과가 아닌 입시에 멍든 우리 교육에 있다.
길 출판사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지적 대안 담론을 찾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프런티어21’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나왔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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