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증권사는 판매 수수료를 타 증권사의 절반 이하로 낮춘 적립식 펀드를 내놓았다. 종전까지는 다른 자산운용회사의 펀드상품을 파는 판매창구에 불과했지만, 이젠 자산운용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그 만큼 판매마진(수수료)을 줄인 상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A증권사는 조만간 선물회사를 새로 인수, 타사보다 수수료를 줄인 선물상품도 내놓을 작정이다.
#2. 도시가스를 판매하는 B업체는 지난 여름 ‘온도(난방지수)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 겨울철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면 옵션계약에 따라 이익을 보고, 반대로 일정 온도 이하로 떨어지면 손실을 보는 방식으로 설계된 상품이다. 우려했던 대로 그 해 겨울은 이상난동(暖冬)을 보여 가스매출이 급감했지만,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헤지한 덕에 매출감소분을 자본이익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내년에 통합금융법이 제정돼 증권 자산운용 선물 투자신탁 등을 아우르는 금융투자회사가 설립될 경우, 이 같은 가상도가 국내 금융현장에서 실제 일어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새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됐고, 증권업계에선 인수ㆍ합병(M&A)을 포함한 ‘빅 뱅’이 예고되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은행 및 보험사들도 지주회사 방식이든 자회사 방식이든 금융투자회사 쪽으로 영역을 넓힐 것으로 보여, 금융의 그룹화 역시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금융권의 큰 그림으로 볼 때 예상되는 가장 큰 변화는 증권업계의 대형화 및 짝짓기다. 통합금융법 제정과 금융투자회사의 설립허용은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 등 자본시장의 칸막이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이렇게 되면 증권사간 M&A를 넘어 증권사+자산운용사, 증권사+선물회사, 증권사+자산운용사+선물회사 식의 짝짓기가 일어날 수 있다. 삼성그룹만 봐도 삼성증권과 삼성투신, 삼성선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생긴 것이다.
특히 중소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자생력 확보차원에서 합종연횡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고객들에게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상품을 내놓으려면 결국 합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구도대로라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은행(상업은행)-보험-금융투자회사(투자은행)의 3대축으로 재편된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금융투자회사는 외국의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지향하는 것으로 앞으로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화증권 서보익 애널리스트도 “금융투자회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증권사들은 대형화를 도모할 것”이라며 “금융투자회사가 자본시장을 주도함으로써 은행 및 보험사와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가 등장한다면, 그 시장영향력은 전통적으로 금융권을 주도해왔던 대형 시중은행을 능가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은행이 없는 유일한 금융지주회사인 한국금융지주나, 보험사 인수를 통해 세(勢)를 넓혀가고 있는 미래에셋그룹 등이 주목 받을 수 있다.
어차피 금융의 패러다임이 저축에서 투자로, 시장의 중심축도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추세인 만큼, 은행이나 보험사들도 계열 증권사를 더 키우거나 신규 인수해 금융투자회사 영역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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