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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만추 적시는 할리우드 이색 멜로영화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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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만추 적시는 할리우드 이색 멜로영화 2편

입력
200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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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리운 계절 가을. 우직한 한 남자의 엘레지 ‘너는 내 운명’으로 시작한 멜로 열풍이 그칠 줄을 모른다. 한국형 멜로가 주거니 받거니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가운데 장르의 규칙을 거부하는 할리우드의 이색 멜로 ‘이터널 선샤인’과 ‘엘리자베스타운’이 잇따라 만추(晩秋)의 극장가를 찾는다.

■ 이터널 선샤인 - 이별의 기억 지울 수 있다면

사랑의 열정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식어가기 마련. 오래된 연인들은 점차 서로에게 지치기 시작하고, 결국은 상처를 주고 받으며 헤어진다. ‘사랑의 기쁨은 순간이고, 사랑의 고통은 평생 계속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랑의 생채기는 오래도록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만일 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우게 된다면 실연의 통증도 함께 사라질 수 있을까.

프랑스 출신의 감독 미셸 공드리와 ‘존 말코비치 되기’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한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터널 선샤인’(원제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기억 삭제’라는 이색 소재를 통해 사랑과 이별을 해부하고 들여다본다.

영화는 어느날 아침 조엘(짐 캐리)이 출근 전차 대신 충동적으로 탄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에게서 “우리는 아마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조엘은 노골적인 접근에 당황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예감하고 마음이 살랑거린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은 막 이별을 고한 연인사이. 클레멘타인과 조엘 모두 기억삭제회사에서 서로에 대한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려 초면처럼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영화는 조엘의 기억을 헤집어 깨진 사랑을 되돌아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시간을 거슬러 조엘의 기억을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권태기 이전 사랑이 꽃피던 시절이 있었고, 그 끝 자락에는 첫 만남의 가슴 떨림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느 사랑 영화처럼 ‘이터널 선샤인’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극을 풀어내는 화술은 너무나도 비범하다. 기억삭제 과정에서 “제발 이 추억은 남겨주세요”라고 조엘이 절규하는 장면은 사랑의 소중함을 망각한 오랜 연인들에게 던지는 경구이다. 10일 개봉. 15세.

■ 엘리자베스타운 - 온정 넘치는 마을이 있다면…

‘엘리자베스타운’은 해리포터 시리즈보다도 더한 판타지이다. ‘제리 맥과이어’ ‘올모스트 페이모스’ 등을 만든 카메론 크로 감독은 미 켄터키주의 작은 마을 엘리자베스타운을 인생의 귀한 선물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마법상자처럼 꾸며 놓았다.

자신이 디자인한 신발로 회사에 어마어마한 손실을 안긴 주인공 드류(올랜도 블룸)는 패배감에 휩싸여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 게다가 고향 엘리자베스타운에 머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시댁 식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신경쇠약 일보 직전의 엄마는 빨리 아버지의 시신을 옮겨 오라고 닦달이다. 실직으로 여자친구와도 멀어졌다.

엘리자베스타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더 없이 밝은 기운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클레어(커스틴 던스트)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고향 친척들의 떠들썩하고 따뜻한 기운에 어느새 녹아 든다. 주변 인물들은 설사 드류가 거절하더라도 기꺼이 손을 내밀고, 특히 클레어는 스토킹에 가까울 정도로 재잘거리며 드류를 수렁에서 구원한다.

아이들이 웃고 뛰는 통에 정신 없는 대가족 생활, 통곡보다는 저마다 고인과의 즐거운 추억을 꺼내 놓으며 웃고 즐기는 장례식 등을 통해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뭉클해진다. 기본적으로 미숙한 한 인간의 성장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골을 싣고 자동차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드류는 비로소 좌절을 극복한다.

멜로,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 20대의 방황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미국 평단에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영화에 담으려 한 탓에 서사 구조가 정교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다소 산만하지만, 영화 속 설정과 캐릭터가 전하는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에 쉬 기분 좋아지는 영화다. 18일 개봉. 12세

최지향기자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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