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지만 제 상처를 온전히 드러내는 이는 드물다. 그것은 상처의 노출을 인내라는 고전 덕목에 걸어 미욱함으로 치부하는 이데올로기, 노출된 상처를 섣불리 이해하고 경박하게 위로하려 드는 무례에 의연할 수 있는 용기를 수반한다.
심지어 상처를 치부(恥部)로 치부하는 시선마저 없지 않다. 상처의 공유는 그래서, 낡은 관념과 부박한 세태에 대한 순결한 투쟁이다. 신현림 시인의 산문집 ‘싱글맘 스토리’(휴먼앤북스 발행)는 그런 책이다.
그는 5년8개월여의 결혼생활을 2003년 청산하고 다섯살 배기 딸과 산다. 시인으로, 사진작가로, 출판기획 일로 늘 분주하고 더러 강의도 하는, 그래야 사는 싱글맘 3년차 직업인이다. 책은 그 고된 노역의 삶과 상처들, 그 속에서 길어올리는 소중한 감동과 기쁨, 희망과 사랑의 전언들로 출렁인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서야 한다는 각오 속에는 얼마나 큰 울음이 담겨 있는지 겪어본 여성만 알 것이다.”(59쪽) 이혼을 전제로 별거에 들었던 시절, 전쟁 같은 결혼생활과 이혼, 이어진 소송…. 막막한 가난과 분초를 나눠 써야 하는 다급한 일상, “두 어깨에 날개가 아니라 무거운 나무둥치가 매달린 것 같”고 “마음은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지던 순간 순간의 아픔들을 그는 치열하고 진솔한 삶의 언어와 시적 아포리즘으로 전한다. 딸과의 실랑이에 속상해서 울고, 하루 중 절반을 놀이방에서 지내야 하는 딸에 대한 미안함에 울고, 그 어린 딸이 “엄마, 내가 지켜줄게”라며 위로할 때 그 어른스러움이 안쓰럽고 대견해서 그는 울고 웃는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서러운 누군가를 위해/ 몹시 바람이 분다./…/ 어미 품속에서 너는 웃지만/ 까만 네 눈 속에서 나는 울고/ 바다 속에서 시계도 울고/ 오래전 사람이던 얼음물고기가 거리에서 녹는다.”(시 ‘술 마시고 간다’ 부분)
실존적 고독, 그 짙은 외로움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대한 진솔한 고백도 있다. 돈이란 섹스와 같아서 못 가지면 그것만 생각하고, 막상 가지면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누구의 말에 얹어 그는 “섹스도 돈처럼 일종의 안정감”이라고 말한다. “섹스가 섹스만이 아니라 삶이 쓸쓸해서 따뜻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일지 모른다”고, “그냥 손이 닿고 몸이 닿음으로써도 병은 낫고 외로움은 녹을 수 있다”(114쪽)고.
시인은 “슬픔에 갇히면 삶이 좁아진다”는 체험적 교훈을 전한다. ‘과거의 짐짝’은 버리고 ‘인생의 칸막이’들을 자꾸 걷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온통 고통이어도 “이 세상을 버텨가게 하는 힘인 아름다움, 그 한 장면”이 있음을, 그 ‘감각적인 영원의 한 토막’이 있음을 그는 믿는다.
사랑이 구원이라는, 그 유서 깊은 환상을 그는 믿는다. 곧, 이 땅의 모든 싱글맘과 정신이 싱글인 모두에게 주는 시인의 희망이고 힘이다.
“‘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보들레르)란 구절이 가슴을 친다. 거리의 시끌벅적한 활기와 그 속에서 어지럽게 흩날리는 먼지. 하염없이 어디론가 흘러가야만 하는 사람들…. 해치워도 쌓여가는 일들을 뒤로한 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고 싶다. 나, 당신, 그리고 누구나 그러고 싶겠지.”(239쪽)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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