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자산관리(돈을 굴려 불려주는 일) 업무만 해 온 한국투자증권 한경준 차장에게 올해는 가장 뿌듯한 한 해였다.
지난해 말부터 고객에게 주식형이나 주식혼합형 펀드를 추천했는데, 올해 모두 높은 수익을 낸 것이다. 그러자 그의 고객 70여명 중 70~80%가 자산 포트폴리오를 전보다 공격적으로 바꾸었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사는 한 고객은 갖고 있던 상가를 팔아 40억원 가량을 사모 주식형 펀드에 넣기도 했다. 적립식 펀드에 매달 1,000만원을 꾸준히 투자하는 고객도 생겼다. 펀드는 개인 등으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 등 증권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간접투자 상품이다.
자산운용을 극히 보수적으로 하는 거액자산가들마저 주식형 펀드로 옮겨간 올해는 1999년 ‘바이 코리아’ 열풍 이후 다시 부활한 간접투자의 황금기라고 할만 하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전체 펀드 수탁액이 200조원을 돌파했고, 이중 주식형 펀드는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래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다.
적립식 펀드로 매달 5,000억~1조원이 꾸준히 유입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2조원, 개인이 7조원 가량 순매도(매입_매도)했는데도 코스피지수가 사상최고치에 올랐다.
‘간접투자의 힘’은 증시의 질을 선진국형으로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직접투자 비중이 높을 경우 단기에 샀다 팔았다하는 손바뀜이 많아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주가도 기업의 실질가치보다는 일시적 호ㆍ악재에 따라 움직인다. 부실 주식에 투기성 자금이 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펀드나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일반적으로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는 성향이 있어 증시 폭락을 막아주고 우량주 가치를 높이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미국 등 선진국 증시도 과거 퇴직연금과 뮤추얼펀드와 같은 간접투자 바람이 불면서 장기 상승세를 탔다.
물론 간접투자 열풍이 곧 증시 선진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99년 바이 코리아 열풍 때는 1년 만에 펀드 수탁액이 100조원에서 200조원으로 급증했지만, 그 해 7월 대우사태와 이듬해 벤처거품 붕괴로 급격히 무너졌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펀드상품들은 주로 며칠 만에 목표수익률을 달성한 뒤 청산하는 투기적 ‘스팟 펀드’였다. 반면 지금 유행하고 있는 적립식 펀드는 우량주 위주의 장기 투자형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선진국형 간접투자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예컨대 적립식 펀드를 판매하면서 실적배당상품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아 고객 민원을 유발하는 것은 간접투자에 대한 전반적 불신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수많은 펀드가 난립하면서 펀드 1개당 규모가 28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펀드 총 수탁액은 200조원으로 미국의 8,600조원과 비교도 되지 않지만 펀드 수는 7,000여개로 미국의 8,000여개와 거의 맞먹는다. 수억원대에 불과한 소형 펀드들은 분산투자 효과를 내기 어렵고 좋은 수익률도 기대하기 어려워 청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투자자의 인식과 운용사의 노력이 미흡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자산운용협회 윤태순 회장은 “자산관리의 트렌드가 저축에서 투자로, 직접투자에서 간접투자로, 단기투자에서 장기투자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면서 “거품이 아닌 안정적 간접투자문화가 정착되도록 투자자와 자산운용사들의 의식이 동시에 향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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