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78.2세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5년에 69.8세였는데 그동안 평균수명이 10년이나 늘어난 것이다.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이에 대한 대비를 충실히 하고 있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를 차지하는 ‘고령화사회’에서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데 100년 가까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2000년에 고령화사회를 돌파했고, 2026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남들이 100년 동안 적응해 왔던 인구 고령화 문제를 우리는 20여 년 안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짧긴 하지만 ‘압축성장’, ‘따라잡기’ 그리고 ‘빨리빨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한국에서 20년이면 충분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려 서구 선진국의 경험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피할 것은 피하자.
●20년 앞 문제 시간 빠듯
스웨덴은 어떻게 했는가? 복지국가의 대표 주자이면서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항상 수위를 달리는 모범국가 스웨덴이 초고령사회를 맞아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1999년 스웨덴은 국내총생산(GDP)의 12% 규모로 사회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연금 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 개혁의 핵심 내용은 중산층에 약속했던 노령화 리스크의 국가 책임을 거두어 들인 것이다. 소위 확정급여 방식에서 확정기여 방식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국가가 “기존 소득의 일정 비율을 죽을 때까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던 약속을 벗어 던지고 “그동안 내신 보험료 원금 총액에 법정이자를 붙여 생긴 연금자산만큼만 드리겠다”고 선을 그어 버린 것이다. 이는 자신의 노후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중산층에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오래 일하여 연금자산 총액을 늘리라는 주문이었다.
그동안 스웨덴은 국민에게 죽을 때까지 안정된 노후생활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노인 인구가 5%, 많아야 10%였던 시기에나 지킬 수 있었던 약속이었다. 노인 인구가 20%에 육박하면서 GDP의 10% 이상을 연금 지급에 쏟아 붓다 보니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경제개발비는 차치하고라도 보육 공공의료 공공주택 교육 실업부조 등 사회복지에 사용할 재원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하다못해 저소득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의 유지도 벅찬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 정부는 확정기여 방식으로의 전환을 통해 고령화로 인한 추가적인 재정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연금제도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중산층 은퇴자에 대한 무한 책임에서 벗어난 스웨덴 정부는 이로 인해 생긴 가용자원과 여력을 ‘최저보증연금’이라는 저소득 은퇴자를 위한 기초연금과 의료, 보육 등 여타 사회보장제도를 건실하게 유지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노인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려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핵심 과제인 기초연금제도의 도입이나 공공보육과 같은 획기적인 저출산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재정 부족 때문이다. 2050년 한해만 400조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현행 확정급여 방식의 국민연금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다른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후발주자 이점 적극 활용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중산층과 시민단체, 대기업 노조의 눈치도 봐야겠지만, 스웨덴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은 미리미리 거두어 들이는 용기도 필요하다. 스웨덴의 선택은 복지국가의 축소가 아니다. 이는 환경 변화에 따라 항상 사회보장제도를 남보다 한발 앞서 적응ㆍ발전시켜온 복지국가 스웨덴의 생존 전략임을 후발주자 한국은 배워야 할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