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바로 최고경영자(CEO)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책은행 직원들도 행장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몸바쳐 일하고 있을까? 아니다. 이런 꿈은 ‘언감생심’인 것이 국책은행 직원들의 현실이다.
최근 산업은행 총재가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며 후임 인사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번에도 재경부 출신, 금감원 출신 등이 유력주자로 거론되자 산은 노조가 “이번만은 내부 출신을 총재로 선임해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산은은 올해로 창립 51주년이나 됐지만, 한번도 내부 출신이 총재가 된 예가 없다. 역대 총재 27명 중 90%는 재경부 고위관료 출신이었다. 이들은 임기 3년인 총재 자리에 평균 1년반 정도 머물었고 장관과 같은 정부 고위직으로 다시 옮겨가곤 했다. 또 다른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도 주로 특정 경제부처 출신이 행장으로 선임돼 내부에서는 한번도 은행장을 내보지 못했다.
이런 일이 수십 년에 걸쳐 세워진 불문율처럼 당연시되면서 국책은행의 장은 민간이 넘볼 수 없는 ‘성역’이 되어버렸다. ‘인사혁신’을 강조해 온 참여정부에서도 이 대목에 있어서 만큼 아직 추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KOTRA에서 최초의 내부출신 사장이 탄생했고,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에도 민간 출신이 사장으로 임명되는 등 공공부문 여기저기서 구태의 벽이 깨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경제부처 출신이라고 일부러 감점을 할 이유는 없다. 관료출신이든, 민간업계 출신이든 ‘능력본위’로 평가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을 선정하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국책은행 직원들의 입에서 “열심히 해봐야 부총재ㆍ부행장 밖에 더 하겠느냐”는 자조가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고주희 경제부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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