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모와 선글라스는 폼이 아니다. 다연발화기를 움켜쥔 꼿꼿한 경계태세는 위엄이다. ‘인간병기’ 경찰특공대. 그들의 눈매와 발걸음이 부산하다. 주말부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12~19일)가 부산에서 시작된다.
부산 경찰특공대는 ‘런던 7ㆍ7 테러’ 직후 첨단장비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재무장했다. 특전사 해병대 UDT 출신, 사격술은 스나이퍼(저격수), 무도 공인 단증은 기본, 체력은 슈퍼맨이다. 5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비상근무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기자는 4일 특공대 복장을 갖춰 입고 함께 APEC 경계근무를 체험했다.
■ 오전 8시 탐지팀 - “통통아, 폭탄을 찾아라!”
부산 동래구 사직동 부산 경찰특공대 본부. 김태경(41) 특공대장이 제복과 군화를 건네줬다. 소형전등이 부착된 검은색 전투모를 머리에 얹자 바로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탐지팀 대원 4명과 함께 급파된 곳은 1차 정상회의 장소가 예정돼 있는 해운대구 벡스코(BEXCO).
대형트럭이 쉴새 없이 오간다. 전자제품과 방송장비를 산처럼 부려 놓았다. 벡스코에 반입되는 물건은 전깃줄 한 토막, 스위치 한 쪽도 체크 대상이다. 머리가 아찔하다. 폭발물 탐지견인 세살박이 통통이와 로스트(리트리버 종)가 해결사로 나섰다.
통통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트럭 주위를 넘나들자 대원들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트럭 위에 올라가 반입 물품을 꼼꼼히 헤쳐 살펴보는 유관 감식이다. 통통이가 짖는 소리가 들릴까(폭발물을 발견하면 짖도록 훈련돼 있음) 긴장의 연속이었다. 2시간 여의 아침 검색시간 동안 다행이 통통이는 짖지 않았다. 탐지견은 또 다른 특공대원이었다.
■ 오전 11시 전술팀 - “우리의 존재 이유는 제압”
부산역엔 개인화기로 중무장한 전술요원이 포진했다. 역사 앞 광장 주변은 전쟁터. 전술팀 차량과 폭발물 처리팀 특수차량, 탐지견 차량 등이 진을 펼친 야전사령부다.
전술팀은 경찰특공대의 상징. 독일제 권총과 다연발화기, 전자충격기를 비롯해 각종 첨단무기(보안상 비밀)까지 갖추었다. 2인1조로 역 광장과 플랫폼, 주차장을 순찰하는 그들의 카리스마에 시민들은 겁을 먹고 있었다. 암약하는 테러범을 향한 ‘위력과시’인 셈이다.
대원들은 “전술팀은 전진 부대입니다. 유사시 위력을 과시하고 초동조치를 하는 것이 주된 임무죠”라고 말했다. 이들의 근무시간은 오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 칼잠으로 몸은 피곤에 절었지만 눈빛은 타오르고 있었다.
■ 오후 1시 폭발물처리팀 - "의심 가방 발견”
“지하철역에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 오바! 즉시 출동!” 무전이 터졌다. 휴식시간마저 여유가 없다. 기자가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는 동안 폭발물 처리(EOD) 요원들은 이미 출동이 시작됐다. 30초 만에 출동 준비 완료! 하지만 곧 오인신고로 밝혀졌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들은 담담하다. “하루 평균 4, 5건의 오인신고가 들어온다. 그만큼 시민의식이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했다.
훈련이 곧 실전이다. 폭발물 의심물체가 종이박스 안에 있다고 가정하는 훈련이 펼쳐졌다. 일단 X-레이를 찍는다. 스위치 전선 전지 등이 발견되면 의심물체. 다음 단계는 ‘물포(물대포)’를 이용해 의심물체를 파괴하는 작업. EOD 대원은 “물의 파괴력은 강력해 기폭장치가 작동하기도 전에 내부를 분쇄한다”고 전했다. 성공률은 90% 이상.
X-레이 판독으로만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동봉을 이용해 안전한 곳으로 옮길지, 폭발물 처리 로봇을 이용할지, 수작업으로 처리할지 결정해야 한다. 물론 수작업 결정이 내려지면 담당 EOB 대원은 일단 목숨을 내놓고 작업에 들어간다.
■ 오후 4시-일과 끝,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대원들이 속속 부산역 임시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날은 제법 쌀쌀하다. 조용한 하루였다. 밤새도록, 새벽까지 마침 아무런 신고도 없었다. 한 대원은 “거 참 이상하네. 강 기자가 무서워서 그런가”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근무를 마친 대원들은 잠시 새우잠을 잔다. 새벽 5시께 근무를 교대할 대원이 한두 명씩 들어선다. 밤새 신고가 없어 이상했다는 대원의 너스레를 비웃듯 경찰특공대엔 크고 작은 신고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부산 시민들의 활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1박2일간 수박 겉핥기식(?) 특공체험을 마치고 나서는 기자의 뒤통수에 우렁찬 고함이 꽂혔다. “경계태세 이상 무!” 태양은 시나브로 떠오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부산=강철원 기자 strong@hk.co.kr부산=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