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접근권’이 갑작스레 화제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은 이벤트는 누구든지 무료로 볼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시청자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손봉숙 의원과 박형준 의원이 관련 법안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그런데 이 발의는 사실상 지상파 3사의 노력의 결과이다.
왜 노력했는가? 시청자의 복지를 위해서? 당연히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지나온 경위를 보면 그 당당한 합리화가 미덥지 못하다.
스포츠대행사인 IB스포츠는 최근 메이저리그 중계권, 월드컵 지역예선을 포함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경기 중계권, 그리고 국내 프로농구 중계권을 싹쓸이했다. 주요 스포츠경기를 독점해오던 방송 3사는 반발했고, 이런 일의 재발을 막자며 법을 만들자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IB스포츠가 무슨 불법행위나 밀실거래를 한 것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겼을 뿐이다. 방송 3사는 ‘보편적 접근법’을 강조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지상파에서 볼 수 있었던 정규 프로농구경기는 고장 15 경기였다. 그나마 그 중 13번은 ‘중계를 위해 특별히 조정된’ 시간에 벌인 시합이었다.
대부분 경기는 자회사인 MBC-ESPN이나 SBS-Sports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다. IB스포츠의 자회사인 Xports과 다를 바 없는, ‘보편적 접근법’과는 무관한 케이블 채널이다.
지상파 3사는 중계료를 놓고 경쟁을 벌이면 그 손해는 시청자에게 돌아온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엊그제까지 경쟁을 벌이며 중계료를 천정부지로 올린 주범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은 애써 과거사로 돌린다.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iTV가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확보했을 때 방송 3사는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계약기간이 끝난 이후 MBC는 거금을 들여 중계권을 확보한 바 있다.
과거의 iTV나 지금의 Xports의 공통점은 메이저리그 중계로 인해 엄청난 무형의 소득, 즉 채널 인지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이는 광고 수익으로 환산될 수 없는 중요한 소득이다. 후발업체로서 출혈을 각오하고라도 시도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방송 3사는 자신들의 고액 베팅은 국민을 위해서라 하고, 후발업체의 시장진입은 국익 운운하며 막자고 한다. 국민과 국익은 항상 지상파의 몫이다. 만약 방송 3사가 메이저리그나 프로농구 중계권을 확보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새벽에 야구중계를 하다가 정규 아침방송을 위해 “9회말은 스포츠채널을 통해 시청하십시오” 했을 것이고, 그나마 어쩌다 편성되는 평일 낮의 농구중계도 10초가 남았건 1분이 남았건 정규방송이 기다리는 한 또 잘라야 했을 것이다.
물론 광고수익이 보장되는 결승전은 지상파 채널에서 중계를 하겠다고 나설 테고. 어떤 시청자가 이를 ‘접근권’이라 부르며 ‘시청자 복지’라고 부르는가?
IB스포츠에게 중계권을 빼앗겼다 하더라도, 정말 시청자를 위한다면 방송 3사가 자존심을 버리고 재구매를 하면 그만이다. 안 팔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일부 보도에 의하면 프로농구 개막전을 중계하려던 부산방송 PSB에게 ‘뜻을 같이해달라’며 중계를 포기하게 한 것도 지상파 3사라 한다. 사실이라면 엄연한 불공정 행위이고 비(非)보편적, 반(反)복지적 행위이다. 방송 3사가 원하는 것은 ‘보편적 접근권’이 아니라 ‘차별적 중계권’인 셈이다.
스포츠 팬들의 인터넷 게시판을 들어가보라. 지상파 3사는 ‘시청자 우롱’, ‘보편이란 말로 현혹’, ‘국민을 볼모로’, ‘오만’ 등의 표현으로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신뢰는 바닥인 듯 하다.
방송법 개정안을 심의할 의원들은 여러 가지를 세심하게 따져주기를 기대한다. 정말 개정안이 필요한지, ‘보편적 접근’의 대상도 결국 방송 3사의 의사에 휘둘려 결정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저런 규제만 만들다가 정작 시장 장벽만 높이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송사 로비에 떠밀려 정작 무엇이 시청자를 위하는 일인지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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