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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총수일가 불구속…검찰, 재벌 앞에 또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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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총수일가 불구속…검찰, 재벌 앞에 또 '무릎'

입력
200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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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너희가 날 구속시킬 수 있어?’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기간 내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두산중공업 노조원들이 1인 시위를 하며 들고 있던 피켓에 박용성 전 그룹 회장의 사진과 함께 적혀 있던 문구다. 법 질서를 농락하는 재벌과 이 같은 재벌에 유난히 약한 검찰을 조롱한 이 ‘블랙유머’가 예언처럼 현실이 됐다.

검찰은 9일 박 전 회장이 수백억 원의 비자금 조성을 주도적으로 지시한 혐의가 드러났으나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 이유로 박 전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스포츠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점, 가족간의 분쟁으로 형제 4명(박용오, 용성, 용만, 용욱씨)이 함께 기소되는 점, 책임을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한 점을 꼽았다.

황희철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동계올림픽이나 IOC 총회 유치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대책 없이 구속하는 건 국익에 심대한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나 2009년 부산 IOC총회의 유치 가능성이나 박 전 회장의 실제 역할에 대해 검증할 수 없는 검찰이 변호인 측 논리를 비판 없이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라면 체육계, 예술계 등 각 분야에서 민간 외교 사절로 활동하고 있는 재벌총수나 고위공직자는 중죄를 지어도 구속할 수 없게 된다.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안기부 X파일 사건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발행 사건의 피고발인으로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데, 이번 결정이 당장 이 회장 수사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7남매 중 4명이 동시에 기소되는 것이 구속보다 더 무거운 처벌”이라는 검찰의 설명도 자의적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ㆍ횡령은 액수가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법원은 그 동안 비리 기업인들에 대해 대부분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고, 대통령은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해 왔다.

검찰이 지금까지 비리 기업인들을 구속해온 데는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 ‘징벌’차원의 고려가 작용했다. 때문에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불구속 기소는 검찰이 종전에 펴왔던 논리와 크게 다른 것이다.

이번 결정은 1999년 한진그룹 탈세사건 수사 당시 조중훈 그룹 회장과 조 회장의 3남 조수호 한진해운 사장을 기소유예 또는 불구속 기소하면서 장남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에 대해서는 엄격히 책임을 물어 구속 기소한 것과도 비교된다. 약자에는 추상 같은 검찰이 거악(巨惡)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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