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정상회담이 열린 4일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45)는 4만 명 군중이 모여든 축구경기장에 섰다. 그의 곁에는 축구공 대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관중석에는 축구팬 대신 반(反)세계화 시위 군중이 있었다. 마라도나 역시 축구유니폼 대신 반미구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축구영웅이 마약중독자로, 다시 정치운동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약물중독과 과다체중으로 지난해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올 8월 자신의 등번호를 딴 TV 토크쇼 프로그램 ‘10번의 밤(La Noche del Diez)’ 진행자로 대중 앞에 컴백했다. 약물중독치료와 위절제술로 날씬해진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펠레 등이 게스트로 등장하는 가벼운 토크쇼였다. 그러나 점차 정치문제가 주요화제가 되더니 나중에는 반미, 반 세계화, 반 빈곤 등을 주제로 한 시사대담프로가 됐다. 마라도나도 변신했다. 이를 확실히 각인시킨 것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의 인터뷰를 방영한 7일의 마지막 방송분이었다.
반미의 선봉에 선 마라도나는 미주정상회담에 참석한 정상들의 대화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시장주의자인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가 마라도나를 지칭, “공을 찰 발은 지녔으나 토론 할 두뇌는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 것.
BBC 인터넷판은 ‘축구경기장에서 정치경기장으로 옮긴 플레이어’로서 성공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 출신인 그는 정부와 부패정치인을 공격, 경기 침체로 증가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빈민층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실제로 빈민층에서는 그를 정치경제적 탄압을 막는 보호자로 여기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BBC는 전했다. 그는 86년 월드컵 때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터뜨린 ‘신의 손’ 골도 포클랜드 전을 복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뜻을 흘리기도 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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