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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33·끝) 평화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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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33·끝) 평화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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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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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우리 국민의 평화의식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본적이 있다. 1989년과 2003년에 조사한 자료였다. 평화는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라는 응답이 예상과는 달리 두 번 모두 30%를 밑돌았다.

사회정의가 실현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상태, 사람들간 그리고 계층간 갈등이 없고, 개인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진 상태 등 정치와 삶의 어떤 상태를 평화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쟁을 넘어 인간의 삶이라는 지평에까지 우리의 평화의식이 넓혀진 것을 보여준다.

북한의 남침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력 위주의 대북안보를 내세우며 국민을 억압하던 독재권력에 저항하던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전쟁보다 내부적 요인을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시민의식 속에 분단문제를 극복하고 통일한국시대를 살아갈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당면하게 될 21세기 안보 위협을 생각하면 우리의 시선이 내부문제에만 고정돼서는 안된다. 냉엄한 국제현실과 안보환경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합리적 지지를 결집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통성과 힘

남과 북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적자(嫡子)자리를 놓고 정통성을 경쟁했다. 정통성은 신념과 이념의 가치체계에 뿌리를 둔다.

통일이 된다고 이제까지 치열하게 겨루던 정통성 경쟁이 하나의 가치체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통합되기는 어렵다. 아마 분단의 세월보다 통합의 과정에 걸리는 세월이 더 길지도 모를 일이다.

통일은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 전쟁의 공포를 해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꿈꾸던 평화가 당연하게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승리로 통일을 이룬다 해도 승리가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화에 대한 내부적 위협요소는 다양하다.

우선 자유와 평등(이론적 평등)의 대립, 갈등과 위협을 정의(定義)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대립, 미국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와 세계적 패권에 대한 수용의 문제, 전쟁 없는 사회와 민족 공동체적, 민주적, 독립적 사회건설에 대한 우선 순위의 대립 등이다.

요즈음 일부에서 한미관계와 자주국방에 관한 논란이 심각하다. 조화를 이루어야 할 당연한 두 명제가 서로 배타적 개념으로만 작용한다. 자신의 것과 다른 가치체계를 용납하지 않는 오만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국가의 정통성과 정권의 정통성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통일 이후에 겪게 될 평화에 대한 내부적 도전을 미리 보는 것 같아 우울하다.

유럽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가진 주권국가들이 어떻게 연합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정치는 분열을 초래하지만 경제는 국경을 넘는 연결의 힘, 통합의 힘이었다.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변국가들과 관계를 설정할 때 무엇을 가장 앞세워야 하는지 전략적 결정을 할 때다.

모든 법률의 뒤에는 이를 강제할 사법경찰이 있다. 헌법의 뒤에는 이를 지킬 군대가 있다. 유럽의 평화적 통합과 안보 뒤에는 NATO와 미국의 군사력이 있었다. 우리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동아시아의 안보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미국과 중국이 벌이게 될 각축이 눈에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안보를 떠 받치는 힘이었던 그 미국이 장차는 체제 동요의 한 동력이 될 것이다.

정통성은 물리적 힘과 더불어 권력의 원천이다. 정통성과 짝을 이루지 못한 힘은 폭력이고, 힘이 없는 정통성은 전복될 것이다.

힘이 없는 국가는 예속될 것이다. 주변국 국민들에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문명인답게 행동할 것을 제안한다고 평화와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다

무기는 전쟁을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무기체계의 존재는 오히려 전쟁을 억지하는 힘이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어떤 도발도 즉각 무력화할 만한 대응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는 도발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상대방에 의해 감시 받고 있다는 것과 자기의 능력이 모두 드러났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도 전쟁을 억지한다. 전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예측할 수 있는 정보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전쟁을 예방한다는 논리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무섭다.

이처럼 중요한 정보전력을 살펴보면 우리는 해방 이후 60년간 특수한 상황아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독립주권국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도 가지지 못했다.

국가급 정보자산은 모두 미국에게 의존했다. 미국에게 지속적인 정보협조를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안이한 생각이다. 혹 그런 협조가 있다면 미국의 이익에 합치되는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정보전력에서 '경제적인 비대칭 전력'이 무엇일까? 특히 무인항공기, 무인지상차량 무인잠수장비 등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

이미 수십km 상공에서 30cm 보다 작은 크기의 지상 목표물을 식별하고 움직이는 여러 물체를 동시에 추적 감시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즉시 공격하여 파괴할 수 있는 무인항공체계들의 발전이 눈부시다.

비행체 기술, 임무수행장비 기술, 비행체와 지상간의 정보 및 자료 통신기술, 우리의 전자ㆍ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했다고 스스로 자랑해도 아직 우리 자체의 힘만으로는 먼 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미국은 이런 최신기술의 제공과 우리의 정보능력 향상에 소극적이다. 미사일기술통제조약(MTCR)을 이유로 내세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매겨도 미국에게 우리는 언제나 2등 국가였다.

동아시아. 서로 다른 뜻을 품은 세계 강대국들이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에 몰려들었다. 우리 주변에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전개한다. 우리는 마치 화산을 품은 판(板)위에 놓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특히 세계적 패권국가 미국에게 꼭 필요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동아시아 심장의 위치에 있다.

그것을 우리 생존의 비대칭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그립다. 통일 이후까지를 내다보는 거시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그네와 평화

말도 설고 글도 선 먼 나라의 깊은 밤, 호텔 창 밖을 내려다 본다. 맞은 편 건물 광고 탑에는 젊은 남녀가 환하게 웃으며 초대의 손을 내밀고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으로 오란다. 경음을 울리며 경찰차와 응급차 몇 대가 어두운 거리를 지나 어디론가 급히 질주한다.

이 도시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불길하고 음습한 폭력의 냄새가 안개처럼 칙칙하게 밤 거리에 내려 앉는다. 두려운 밤이다.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다.

먼 나라에서도 의식은 늘 아시아의 동쪽 끝, 내 나라 하늘을 맴돈다. 짙게 드리운 어두움. 그것을 걷어 낼 수 있을까? 그곳을 떠나, 삶의 장(場)을 떠나, 평화란 다른 어느 곳에 따로 존재하는 걸까?

시련, 고난은 늘 그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과 함께 온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은 없다는 믿음이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신앙 아니겠는가?

역사 속에는 표면의 질서와 다른 이면의 질서가 존재한다. 마치 바람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빙산과 같다. 종교는 이를 신의 역사로 부르고 우리는 역사의 흐름이라 부른다.

평화로 이르는 길은 없다. 우리가 걷는 길이 평화의 길이어야 한다. 우리는 길목의 어디쯤에 서 있는가? 무엇을 들고 서 있는가? 무기와 전쟁을 얘기했지만 평화롭게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며 살고 싶다.

■ 무인 항공기란?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Pax Americana)를 지킨다는 패권적 전략에 따라 미국은 전세계를 감시할 수 있는 정보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인공위성은 어느 특정한 지역을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감시하기에는 취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은 장거리 고고도(HALEㆍHigh Altitude Long Endurance) 무인비행체계(UASㆍUnmanned Aircraft System. 이전에는 UAVㆍUnmanned Aerial Vehicle로 불렀다)를 개발, 배치하고 했다. 글로벌 호크(Global Hawk)가 대표적 체계이다.

장거리를 고고도로 비행하면서도 정밀한 영상정보를 실시간으로 송신할 수 있다. 따라서 전진 배치된 지상기지 중심의 정보전력의 재조정 또는 철수가 예상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2가지 측면에서이다.

첫째, 미군의 작전운영에 지장이 없는 시기가 되면 한국에 배치되어 운영중인 정보전력을 점차적으로 철수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국가급 정보자산을 보유하지 못했고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중고고도(MALEㆍ Medium Altitude Long Endurance)급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의 정보자산을 빼면 국가급 및 전략급 정보자산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된다.

미국의 지속적 정보협조가 없으면 우리의 전력은 전술적 작전만 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향후 국가급 이상의 정보자산을 획득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미군의 정보전력 철수에 대비하여야 한다.

※ 3월 2일부터 8개월 넘는 기간 동안 연재하던 '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은 한국일보 인터넷 신문( www.HANKOOKi.com)으로 옮겨 계속 연재합니다.

윤석철객원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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