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했을 뿐인데…. 앞으로 농민과 정부 사이가 서로 좋아지도록 하는 가교 역할에 더욱 충실하겠습니다.”
농민들의 집회ㆍ시위를 담당하는 경찰관이 농민단체의 추천을 받아 농업인의 날 장관표창을 받게 됐다. 주인공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정보보안과 김필수(38ㆍ사진) 경사.
김 경사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모의 농사를 도왔다. 그는 1985년 해병대에 입대한 후에도 대민 지원을 나가서 늘 농민들과 잘 어울려 ‘전라도 이앙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농사를 지으며 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의 유일한 생활수단이 농사였던 그에게 농민들은 곧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였다.
1990년 경찰에 투신해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 영등포경찰서 교통과 등을 거쳤다. 2002년 11월 영등포서 정보과에서 농민단체를 담당하게 되면서 농민과 다시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농민단체협의회 등을 맡고 있다.
가장 힘들었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3년이다.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비준과 관련해 전국이 들끓었다. 농민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김 경사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김 경사는 “당시 무작정 농민들을 진압하기보다는 그들과 직접 대면하고 이해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고 사고를 막는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대화가 항상 통할 수는 없다. 농민들과 몸싸움을 벌일 때도 있었고 얼굴도 붉혀야 했다. 때로는 농민들과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다 잔디밭에서 잠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농민 단체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다.
김 경사는 새벽밥 먹고 아침 일찍 시골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구속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해 2월 농민 2명이 여의도공원 잔디밭에 불을 질러 구속됐을 때 그는 사식을 넣어주며 가족처럼 돌봤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두 농민은 고향으로 내려가 명절 때 농산물을 올려보내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를 추천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김 경사가 농민 단체들과 평소에도 교류가 많아 우리 입장을 많이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쌀 협상 국회비준을 앞두고 다시 바빠진 김 경사는 “정부가 농민부채탕감이나 소득보전을 위해 힘써줬으면 한다”며 “국민들도 마음의 고향인 농촌 문제에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농림부는 11일 농협중앙회에서 열리는 ‘제10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김 경사 등 155명에게 훈장, 산업포장, 표창을 줄 예정이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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