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받치는 설움을 꾹꾹 눌러둔 채, 아니면 그 설움을 씻으려 빈 방에서 한참을 혼자 울고 난 뒤의 시큰한 목소리로 가수 심수봉(50)은 “사랑밖엔 난 몰라”라고 노래한다.
그 사랑은 여자로서 늘 남자를 향해 있고, 순종적이며 운명적이다. 때문에 노래는 남자의 ‘커다란 어깨 위에 기대고 싶은’ 간절함,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아픔의 독백이자 방백이다. 소설가 김훈은 ‘김훈세설(世說)’이란 책에서 이를 ‘결핍’이라며, ‘심수봉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 여자의 결핍의 애절함에 의해 남자인 나 자신의 결핍을 깨닫고, 그 결핍이 슬픔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까지 했다.
알다시피 그러나 심수봉은 그 독백과 방백마저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바퀴가 흩뿌린 피에 옷이 젖어버린 ‘그때 그 여자’. 10월 26일이면 생각나는 여자는 입을 다물고 얼굴을 파묻어야 했고, 무대를 잃었다.
그녀는 그 흔적이 지워지길 간절히 원했지만, 그날만 되면 자신을 기억하려는 역사와 그날의 기억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피하며 ‘망각’하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했다. “그 짐 벗으러 책도 내고, 토크쇼에도 나가고 했지만 세상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그 사건’을 겪은 것은 가수로 정식 데뷔한 지 불과 5개월 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오직 음악적 열정만 가진 신인 가수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으니 인생 전체가 휘청거리고 뒤틀린 것은 당연했다.
지진에도 여진이라는 것이 있듯 가수 활동금지는 물론 사생활도 정상적일 수 없었다. 정신 차려 살려고 해도 세상이 만든 시각이 나를 옥죄였다. 나에게 씌워진 멍에가 억울했다. 공인으로 물의를 빚은 것도 아니고, 피해자인데 보호는 못해줄망정 정치적 필요에 의해 죽이고…”
10ㆍ26 사건은 그녀의 다리까지 붙들어 맸다. 1982년 NHK가 일본 최고 가수들과 함께 공연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해외출국이 허락되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그로부터 5년 후 해외로 나가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다.
방송활동 금지가 풀린 것은 1984년.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심수봉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무궁화’를 불렀다. 그런데 가사를 문제 삼아 방송금지를 시켰다. 그것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그랬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해 지금 대통령의 이미지 세우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이유임을 심수봉은 나중에야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무궁화’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였다. “참담한 세월 속에 첫 애기를 낳고 나서 그 핏덩어리를, 책임져야 할 생명을 보면서 엄마로서 착잡한 심정을 함축적인 시대상황에 맞춰 노래했다.
무궁화의 놀라운 생명력을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궁화’야말로 가장 오랜 산고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국립묘지도 두 번이나 찾았다. 3, 4분짜리 가요에 철학을 담기란 쉽지 않았다. 그 시대 심수봉이 만들고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됐을 뿐이다.”
무대를 잃었다고 노래까지 버릴 수 없었다. 불우한 가객에게 “노래는 나의 신경변화와 느낌을 집어넣은 누군가에게 말 걸기였고, 눈물이고 외로움이고 호흡이고 사랑이고 영혼의 표현”이었다. 그것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에게는 불만일지 모르나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 애환을 쉽게 표현한 그의 노래들은 특히 여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러기를 26년. 여전히 세상은 그녀를 ‘그때 그 여자’로 보려 하지만 심수봉은 그 시선을 뒤로한 채 이제 가수로 마음껏 노래 부르려 한다.
지난해 12월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11개 도시 순회공연 중이고, 올 1월에 10집 앨범 ‘꽃’에 이어 1일에는 그동안 발표한 노래 중 33곡을 골라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앨범’을 냈다. 그리고 16일(오후 4시, 8시)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25주년 기념공연을 갖는다.
1978년 대학가요제를 거쳐 이듬해 데뷔앨범을 냈으니 1년 지각 기념공연인 셈이다. “길고 긴 어둠의 골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욕이 너무나 간절하다. 내년 5월에는 새 노래 6곡과 이미자 나훈아의 히트곡 6곡을 담은 트로트 음반도 낼 예정이다. 돌이켜보면 가수로 제대로 활동해본 적이 없다. 목소리도 그대로 남아있다. 아직도 신인가수인 셈이다.”
심수봉은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지난 시절을 “운명이 아니라 섭리”로 생각한다. 7, 8년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지금의 남편과 재혼을 하면서 그녀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했다. 노래의 사랑색깔을 바꾸기 시작하고, 지난 시절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상을 찾고 싶었다. 좋은 남자 만나면 외로움과 눈물을 씻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성을 사모하는 소유적, 육체적 사랑에서 아가페적 사랑으로 넓어지고 싶다. 이 나이에 인생의 답을 받은 것 같다. 많은 사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만이捉?모두 사랑해야 한다. ‘백만 송이 장미’의 가사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5주년 기념공연에 그녀는 몇 사람을 특별초대한다. ‘그때’ 이후 긴 세월 힘들 때마다 찾아와 도와준 ‘의리의 사나이’ 박태준 전 포철회장과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른 배우 전도연, 자신에 대해 글을 쓴 소설가 김훈씨 등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총재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뜻하지 않게 한 남자의 임종을 지킨 여인과 그 남자의 딸의 ‘비극적 운명’ 때문에 지난해 12월 서울공연 때 초청했지만, 박 총재가 급한 일로 참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둘의 첫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 또한 운명이니 굳이 다시 초청할 생각도 없다.
그녀는 이번 무대에서는 피아노도 치고, 처음으로 춤도 추겠다고 한다. 어떤 몸짓이 되든 그 춤이야말로 그녀의 26년 한과 설움을 털어버리는 것이 될 터이다. 해원상생(解寃相生)! “지금 내 마음이 가장 편하다.”
이대현 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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