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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나는 감만 보면 깎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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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나는 감만 보면 깎고 싶어진다

입력
2005.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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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각 지역 사람들 가운데 어느 곳 사람이 사과를 가장 잘 깎을까? 이렇게 물으면 모두 사과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과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해서 사과를 많이 깎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과를 잘 깎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감이 많이 나는 고장의 사람들이다. 나도 웬만한 여자들보다 더 빠르고 솜씨 있게 사과를 깎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늦가을 저녁마다 감을 깎았다. 감이 많은 해는 오륙백 접이 열리기도 했다. 그걸 모두 곶감으로 만들어 팔아 다음해 봄 형들의 대학 등록금에서부터 우리들의 중고등학교 등록금을 냈다.

어제 아버지 어머니가 감을 부쳐 주셨다. 조금 무른 것은 따뜻한 부엌에 나란히 두어 연시를 만들기로 하고, 딱딱한 감은 모두 깎아서 바람 좋고 볕 좋은 베란다에 내다놓았다. 어른 주먹보다 크고 길쭉한 ‘고동시’들이다.

세어보니 모두 예순다섯 개다. 바람 속에 하루하루 겉이 마르고 속이 말랑말랑해지다가 어느 순간 뽀얗게 분이 날 것이다. 특별히 곶감이 먹고 싶어 깎은 것이 아니다. 내가 깎은 것은 내가 지나온 가을의 추억이다. 나는 감만 보면 그렇게 깎고 싶어진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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