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이 길고 끝이 둥글게 올라간 중절모를 쓴 앙상블이 음악에 맞추어 엄지와 중지를 튕긴다. 점잔을 빼듯 걷다가 팔과 다리와 몸통을 뒤틀고 허리와 엉덩이를 흔든다. 지팡이와 의자를 소품으로 사용하며 만들어내는 몸짓은 독특한 관능미를 물씬 풍긴다. 너무나도 유명한 밥 포시 춤의 한 장면이다.
안무가와 연출가, 영화 감독 등으로 창작열을 불태우며 뜨겁게 살다간 밥 포시(1927~1987)의 뮤지컬 ‘피핀’이 18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포시의 작품이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 된 것은 ‘시카고’와 ‘캬바레’에 이어 세 번째다.
‘피핀’은 73년 한 해 동안 아카데미상(‘캬바레’)과 에미상(‘리자 위드 에이 투 제트’), 토니상 등을 동시에 거머쥐며 영화와 TV, 무대를 호령했던 포시의 전성기 열정이 온전히 녹아 든 작품. 9세기 프랑크 왕국 찰스 대제의 아들인 피핀이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 반전이 결말을 장식하지만, 희망을 지닌 채 반복되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평범한 교훈을 담고 있다.
극은 성과 마약을 탐닉하다가 혁명의 열정에 빠져 들지만 금세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는 우유부단한 청년 피핀의 행동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간다.
피핀이 극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리딩 플레이어(Leading Player). 그는 극 중 인물이 아니면서 무대 위에서 연출가나 작가처럼 등장 인물의 심리를 조절하고, 관객들에게는 무대와의 거리감을 유지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다.
‘피핀’은 197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후 5년간 장기 공연되었으며 73년 토니상 연출상 안무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위키드’와 영화 ‘포카혼타스’ ‘이집트의 왕자’로 유명한 스테판 슈왈츠가 음악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87년과 89년 최민수 주원성 주연으로 각각 공연되었으나 국내 공연권을 얻어 무대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국내 첫 정식 무대는 밥 포시 전문가를 자처하는 배우들과 스태프가 꾸민다. 2001년 포시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만든 ‘올 댓 재즈’의 연출가 한진섭과 안무가 서병구, 배우 윤복희가 다시 손을 잡았다. ‘사랑은 비를 타고’와 ‘소나기’에 출연한 최성원과 영화 ‘웰컴 투 동막골’로 얼굴을 널리 알린 서재경이 피핀역을 맡았다.
한진섭은 “‘피핀’은 절제와 발산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이라며 “포시의 독창적인 춤과 연출 세계를 그대로 살릴 수 있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내년 1월15일까지. (02)501-7888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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