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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알기 쉬운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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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알기 쉬운 언론의 자유

입력
2005.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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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쥬디스 밀러 기자는 57세다. 여전히 취재일선에서 뛰고 있다. 2개월 전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그는 화려했던 28년 기자인생에서도 최고 정점에 올랐다.

그가 수감되던 날 NYT 사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뉴욕타임스와 직원들에게 자랑스럽고도 가슴 아픈 순간이다. 밀러기자는 취재원을 밝히는 대신, 징역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밀러가 보호하던 익명의 취재원이 당대의 실세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란 사실이 확인되자 평가는 급강하했다. 이달 초 NYT 옴부스만 칼럼의 내용은 이렇다. “(많은 비판들로 인해) 우리는 밀러 기자가 다시 뉴욕타임스에서 일할 수 있을 지 의문을 갖고 있다.”

밀러는 수많은 인물의 부침(浮沈)을 관찰해왔을 터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일어난 것 만한 반전(反轉)을 본 적이 있을까. 다른 나라 언론인에게는 더욱 극적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언론 자유라는 가치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왜곡하고, 이용해 왔는가, 그리고 미국의 언론이 어떻게 도착(倒錯)된 가치를 스스로 바로잡아가는지 낱낱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NYT는 지난달 장문의 탐사기사로 리크게이트(CIA 비밀요원 신분 누설사건)에서 밀러의 행적과 NYT 수뇌부의 대응을 추적했다. 기사에는 밀러의 주장이 왜 가식적인지, 그리고 발행인인 아더 설츠버거 2세가 얼마나 맹목적이었는지 기술돼 있다. 뉴욕매거진은 더욱 긴 기사에서 밀러가 NYT의 간판 스타로 부상한 과정을 묘사했다.

밀러는 뉴욕의 명문여자대학 바나드대과 프린스턴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77년 뉴욕타임스에 입사했다. 그는 상대의 품 속에 들어가는 취재방식으로 종종 취재원과 애정행각에 빠졌다. 훗날 국방장관이 된 레스 아스펜과는 동거를 한 적도 있다.

동료들에겐 공격적이고 무례했다. NYT 배차실에선 운전기사들이 한때 그의 승차를 거부했다. 워싱턴 지국에서 함께 일한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난 언제나 쥬디스를 좋아했다”라고 비꼬면서 그를 ‘자리 도둑’(Seat-Stealer)라고 불렀다.

하지만 설츠버거와는 각별한 교분을 쌓는다. 워싱턴에서 함께 햇병아리 시절을 보낸 정분은 오래 지속된다. 사내의 또 다른 후원자는 편집주간인 하월 레인즈였다. 9ㆍ11 당시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특종 때문에 곤경에 처한다. 그런데 NYT에는 네오콘과 친한 기자가 없었다. 리비 등의 신뢰를 얻은 밀러는 최강의 무기였다.

2002년초 탄저균 우편이 미국을 떨게 하고, 밀러 자신에게 흰 가루가 담긴 봉투가 배달됐을 때 ‘병균(Germ)’이란 제목의 밀러의 저서는 베스트셀러 1위가 됐다. 그는 편집국의 전설이 됐다.

밀러의 함정은 취재원과 가까워지는 것을 언론 최고의 미덕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잔느 다르크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고발하는 측이 아니라, 고발자를 탄압하는 측에 서 있었다. 취재원 보호는 독자에게 더 많은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사실을 숨기고 조작하게 됐다. 그에겐 ‘전쟁의 치어리더’라는 별명이 붙었다.

밀러는 다른 기자들에게도 잊어버렸던 단순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언론의 자유란,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것이지 별 게 아니란 점이다. 우리도 정권이 몇 차례 바뀌면서, 기사를 한 줄 못써본 전문가들이, 너무 많은 ‘언론의 참 길’을 내세우며 논쟁하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인 교훈이 더 명쾌하게 다가온다.

요즘엔 미국의 칼럼들에선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후배에게 한 충고가 종종 거론된다. “먹이를 주는 손을 물어뜯어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충고를 하는 것도 바로 ‘알 권리’를 위한 것이지 다름이 아니다.

유승우 국제부장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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