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가 똑같은 상자 다섯 개에 똑같은 짐을 넣으신다. 마당가에서 딴 감도 넣고, 아주 달고 단 배도 넣고, 할아버지가 심은 밤나무산의 토종밤 한 봉지, 고추 한 봉지, 배추와 무김치 한 봉지, 오이와 마늘과 매실 장아찌 조금씩을 상자마다 나누어 담으신다.
자식이 많으니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난 다음, 마당가에서 거둔 과일과 어릴 때 늘 먹고 자라 입에 맛이 붙은 밑반찬을 다섯 자식 모두에게 일일이 챙겨 보내주시는 일 역시 여간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는 짐을 포장한 다음 차를 불러 물건을 보내고 나니 평상 끝에 고추봉지 하나가 남아 있더라고 했다. 다섯 개의 상자 가운데 어느 상자엔가 고추가 빠졌는데, 그 상자가 어느 자식에게로 갈까 아버지 어머니도 궁금하신 모양이다.
전화를 받으며 아내가 “아마 그 상자는 미운 며느리한테로 갈 것 같은데요” 라고 했는데 바로 그 상자가 우리집으로 왔다. 짐을 받고 다시 전화를 드리니 “그래, 그럼 바로 갔는가 보다” 하셔서 또 한번 크게 웃었다. 부디 건강하고 또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우리와 함께 사셨으면 좋겠다. 짐을 받고 우리 모두 가슴이 뭉클해졌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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