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국국어교사모임이 공동 주최하는 ‘문장 청소년 문학상’ 10월 장원 시 부문에 김재현(대구 달성고)군의 ‘상처의 시간’, 이야기글에 이현희(명덕여고)양의 ‘살아보기’, 생활글 부문에 광윤영(인천 문일여고)양의 ‘버스안에서’, 비평글 부문에 신준재(부산 간디고)군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똑바로 읽고나서’가 각각 뽑혔다.
▲ 상처의 시간 / 김재현
밤의 숨소리가 지척에서 들려 올 때면
쓰러져 가는 기와집 대청 마루에 뱀이 올라왔다.
세상에 상처 입은 어미의 약을 구하러
산으로 간 외할애비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픈 어미의 몸 속으로 기어 들어가
뱀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덩치가 꿈틀거릴 때마다
광기로 번득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외할애비가 달아 놓았던 낡은 형광등 불빛이
뱀의 숨결에 자꾸만 깜빡거렸다.
나는 어미의 차갑게 식은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어미의 몸은 온통 뱀에게 물린 자국이었다.
나는 소리를 죽여 울었다.
바람으로 얘기하던 뱀의 문종이 뜯어내는 소리,
그리고 저 멀리 늙은 외할애비의 지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닫혀 있던 문을 열어 젖혔다.
망태기에 푸른 이끼를 가득 채운 외할애비의 손에
뭉툭하고 녹슨 낫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뱀은 광기가 번들거리는 황색 눈깔로 나를 바라보며
외할애비를 피해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누르고 있던 것들을 터뜨려 엉엉 울었다.
외할애비는 장승처럼 우뚝 선 채
충혈된 눈으로 나의 울음을 몸 속에 박아 넣고 있었다.
이 놈, 이 배라먹을 놈, 하고 외할애비는
도망가는 뱀의 꼬리를 향해 낫을 내저었다.
외할애비는 눈깔을 뒤집으며 나에게도 작은 낫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러나 외할애비의 낙엽 바스라지는 목소리를 뚫으며
수만 가닥의 실핏줄로 펄떡거리는
이제 갓 허물을 벗기 시작한 내 성대는
벌써부터 사라진 뱀의 바람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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