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까지 나는 남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고 2때 만난 독일어 선생님이 좋아서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한만큼 결과가 나오니 점점 다른 공부에도 자신을 갖게 되었다.
겨울 방학 때는 고향에 가서 독일어 3000단어 숙어집을, 독일어로 물으면 우리말로 대답하고 우리말로 물으면 독일어로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외웠다.
힘들고 지겨운 작업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면서 나는 비로소 공부에 끌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고3 여름방학 때는 영어 단어 숙어집도 이렇게 외우기 시작했다.
대학 입학 원서에서 나는 독문과와 언어학과와 철학과를 선택했는데 다른 학문 분야를 선택하면 내 길을 가지 않았다고 평생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1학년 1학기에 친구가 권해서 그리스어 수강신청을 했는데 이것이 내가 그리스어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1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서 차츰 그리스어에 반해 겨울 방학 때는 고향에 내려가 ‘그리스어 첫걸음(First Year of Greek)’이라는 책을 통독했다.
그것이 그 뒤 그리스어를 공부하는 데 큰 밑천이 되었다. 2학년 1학기부터 장익봉 교수의 플라톤의 ‘향연’ 강독을 들으면서 나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친구들끼리 모여 사랑 국가 영혼불멸 등등 중대한 인생사에 관하여 묽은 포도주를 마셔가며 진지하고 격의 없이 토론하는 장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장 교수와 3학년 때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4학년 때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9권을 읽었는데, 3학년 2학기 때는 같이 강의를 듣던 학우들이 모두 군에 입대한 까닭에 나 혼자서 강의를 들었다.
장 교수는 학생이 번역하는 것을 교정해주는 방법으로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혼자서 학기 내내 강의를 준비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나중에 그리스어 원전과 씨름하는 데 적잖은 자신감을 주었다.
학교 강의와는 별도로 나는 또 한번 혼자서 일을 벌였다. 2학년 겨울방학 때 고향에도 내려가지 않고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호메로스의’일리아스’를 그리스어로 읽기 시작했다.
첫날에는 온종일 50행 정도 읽었다. 그때만 해도 편리한 호메로스 사전이 있는 줄 몰라 옥스포드 희영사전을 뒤져 동사나 명사의 원형을 찾아 노트에 옮기는 고된 작업을 했는데 이미 플라톤을 읽으며 고대 그리스의 인간적인 사고방식에 심취해 있던 터라 내가 호메로스를 읽는 것을 아무도, 아니 나 자신도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자나 깨나 내게는 호메로스뿐이었다. 호메로스 읽기는 방학 때는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강의시간과 시험 때를 빼고는 계속되었다. 3학년 겨울방학 때 ‘일리아스’를 끝내고 ‘오뒷세이아’를 읽기 시작했다. 어느새 호메로스적 표현에 익숙해져 ‘오뒷세이아’ 읽기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61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첫 학기는 독일어 듣고 말하기를 배우고 두 번째 학기부터 그리스어 집중 코스와 라틴어 집중 코스를 듣기 시작했다.
4년을 기약하고 떠났기 때문에 독문학에 바로 들어가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도 독일 대학에서 내 그리스어 실력을 검증받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독일대학에서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강의는 가다머(Gadamer) 교수의 철학 강의를 많이 들었다. 그때 비로소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그리스어 검정고시(Graecum)는 주당 5~6시간씩 2학기를 들어야 주정부 교육청이 시행하는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그리스어 실력을 다질 요량으로 수강신청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행한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 뜻밖에 1등을 하는 바람에 내친 김에 검정시험에도 응시하여 합격했다.
라틴어 검정시험(Latinum)은 ‘대’(大 grosses)와 ‘소’(小 kleines)로 나뉘는데 ‘대’는 신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이, ‘소’는 의학, 경제학 등을 공부하려는 대학생이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수업도 ‘대’는 4학기를, ‘소’는 2학기를 이수해야 응시 자격이 있다. 나는 라틴어 ‘대’에 응시하여 중간 성적으로 합격했다.
어느 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쳐준 개르트너 교수가 자기 집에서 저녁이나 하자며 초대해서 가보았더니 장학금을 얻어줄 테니 고전문학으로 학위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해왔다.
그러나 고전문학으로 학위를 하려면 10년도 더 걸릴 것이고, 그리스 라틴 문학을 전공해봤자 설 자리도 없고 남이 인정해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처지라 며칠 고민 끝에 거절을 하였다.
그 사이 2년 반이란 시간이 흘러가 남은 시간은 1년 반밖에 없었다. 나는 학위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가 평소 꼭 읽어보고 싶었던 문학 작품들을 탐독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마침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물리학 공부를 마치고 독문학을 공부하려고 독일에 ?유학생을 통해 프린스턴 대학에서 권장하는 100권의 필독도서 목록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독일 대학에서는 공부하라고 들볶아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분위기가 자유로운 데 반해 미국 대학에서는 학교에서 필독서 목록까지 만들어주며 그때그때의 과정이 요구하는 책을 읽지 않게 되면 학점이 나오지 않는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그 목록을 참고하여 우선 독일 장편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괴테, 토마스 만, 도스토옙스키의 장편들을 거의 다 읽었고 슈티프터, 켈러, 카프카, 쟝 파울 등의 장편소설을 골라서 탐독했다.
독일어 명작 읽기 작업은 86~90년에 다시 계속해 레싱에서부터 렌츠에 이르기까지 희곡과 단편들과 현대 장편소설들을 추려서 읽었는데, 독일 한자(Hanser) 출판사의 독일고전 시리즈의 판형으로 따져 약 3만 쪽은 될 것이다.
5년 만에 귀국하여 나는 운 좋게도 그리던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으나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고 10년 동안 자격을 정지당했다.
꼭 그런 가혹한 형벌을 내려 젊은 인재들을 망가뜨려놓았어야 하는지 아무래도 납득이 안 간다. 옥중에서도 나는 책 읽기를 계속하여 주로 을유문화사와 정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전집을 쉬지 않고 읽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남아돌아 사서삼경과 고문진보, 당송 팔가문 같은 중국 고전도 옥편을 뒤지고 주석을 참고하며 읽었고, 기독교의 신약성서와, 구약의 창세기와 ‘아라비안나이트’도 느긋한 마음으로 읽었다.
마침내 3년 2개월 만에 특별사면으로 집으로 돌아왔으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부모형제와 친척들에게 죄송하고, 무엇보다도 생계가 어려웠다.
그때는 연탄 한 2백 장 재어놓고 쌀 한 가마 들여놓는 것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그때 선배의 주선으로 휘문출판사에서 플라톤의 ‘국가’ 6~10권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5~8권을 그리스어 원전에서 우리말로 번역했다.
72년에 나온 이 책이 나의 첫 그리스어 원전 번역이다.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도 번역을 했다.
1981년 자격정지 기간이 끝나면서 천신만고 끝에 대학에 돌아갈 수 있었으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늘 불안했다.
어쩌면 나더러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세계 12대 경제대국인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원전 번역으로 소개하라고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와 3대 비극작가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세네카, 키케로 같은 선현들이 뒤에서 나를 은근히 밀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황당한 생각한 생각도 해보았다.
1982년에는 드디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그리스어 원전 번역에 착수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였다. 원전번역은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정년퇴직 후에나 착수할 생각이었으나 시력이 감퇴되어 미루다간 영영 못할 것 같았다.
정년퇴직한 후에는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역사와 그리스 미술에 관한 책과 영웅전이나 조금씩 읽으면서 슬슬 만년을 즐겨볼까 하다가 다시 번역작업을 시작해 하루 6시간 정도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내게는 어떤 여행도 독서에 의한 지적인 여행보다 즐겁지 못하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도 책 속의 깊은 사상과 멋있는 표현을 곱씹어보는 것만큼 감미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시 드라마 신화 철학 역사 지리 의학 수학 조각 건축 도서관 민주주의 의회 투표 올림픽 포도주 등 서양의 좋은 것들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의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서양문화의 원형을 이해하려면 그 원천인 그리스 정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거기에 이르는 확실한 지름길은 그들이 남긴 기록과 유산부터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다. 거기에 그리스 고전 연구의 의미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먹고 살만하니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양성하여 그리스 로마 고전 200권 정도는 하루 빨리 우리말로 옮겨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교육부와 문화부의 책무이며, 이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는 그리스 라틴문학을 원전에서 번역하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지금까지 40여종의 그리스 라틴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1
939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독문과를 나오고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6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이곳에서 독문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도 자격고시에 붙을만큼 공부를 했다.
67년 귀국하던 해에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전임강사로 부임했으나 독일 유학 중 북한을 방문한 것이 빌미가 되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3년형을 살았다.
81년에 단국대 독문과 교수로 부임, 2004년까지 재직했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중 독문학으로 서울대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옮긴 작가로는 호메로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크세노폰 이솝 메난드로스 헤시오도스와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키케로와 세네카 등을 망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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