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개인의 돈 굴리는 방식에 주목할만한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 수 십년 간 예금저축과 부동산이 지배해온 재테크 패러다임이 깨지며 가계자산구조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일하는 시간보다 은퇴 후 시간이 많아지는 고령화 시대의 도래, 저성장 터널 속에서의 은행 저금리, 상시적 구조조정이 일으키는 일자리 불안, 국가적 압박에 의한 부동산투기시대의 퇴조…. 이런 사회경제적 환경변화가 각 개인의 재테크 사고(思考)와 가계자산설계의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사는 주부 이점순(48)씨. 이씨는 지난해말 펀드상품에 1,000만원을 투자한 후 고전적 재테크 방식에서 완전히 돌아섰다. 은행에 넣어둔 예금의 만기가 되는 대로 꺼내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이씨는 갖고 있는 오피스텔도 팔려고 내놓았다. 증권상품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회사원 박정수(33)씨는 최근 다달이 부어오던 적금을 해약하고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 원금손실이 없는 안정적 금융상품을 최고로 여겼던 박씨는 앞으로 공격적인 투자전선에 뛰어들기로 했다. “과거와 같은 고금리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갔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어 오래 산다고 하니 노후 대비가 더 신경 쓰여요.”
각종 통계는 가계의 여유자금이 시장경계를 넘어 대이동하면서 자산포트폴리오(구성)가 재편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예금과 부동산이라는 재테크의 양대 산맥이 꺾이고, 주식 등 다양한 증권투자상품으로 돈이 몰리는 형국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자. 가계의 저축성 예금 가운데 단기자금(수시입출금식 예금)을 뺀 정기예금은 작년 말 269조원에서 올 9월 254조원으로 15조원이나 줄었다.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도 8ㆍ31부동산대책 이후 가격 하락에 따라 액면 가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가로 돈이 몰리고 있다고도 하지만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이다.
한편 주식시장의 투자상품에는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특히 간접투자 열풍은 경이적이다. 올 초 8조원 수준이던 주식형 펀드 자금은 지난 25일 20조원(잔액기준)을 돌파했다. 상반기만해도 매달 1조원 가량 늘던 것이 최근 들어 월간 증가액이 2조원을 넘어 3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폭발성은 투기성이 낮은 적립식 펀드(9월말현재 10조원)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 년 전 벤처거품 때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은행 정기적금 계좌가 급감하는 반면 적립식 펀드 계좌는 400만개를 넘어 급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마디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파트와 땅을 엿보던 대기자금이 부동산주변시장에서 철수하고, 금융시장의 ‘저축’에서 자본시장의 ‘투자’로 가계의 여유자금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안전제일주의 아니면 한탕주의,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양분됐던 투자패턴도 이에 따라 다채로워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안정과 고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선진국형 자산포트폴리오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등 구미 선진국들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개인금융자산에서 주식비중이 턱없이 낮다는 사실은 지금 일고 있는 가계자산 재편이 앞으로 가속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분석부장은 “예금과 부동산 위주의 재테크 관행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이런 수요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려면 자본시장의 선진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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