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 일본 구마모토(熊本) 지법은 규슈(九州)ㆍ시코쿠(四國) 지역 음성 한센병 환자 127명의 주장을 인정, 국가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취임 한 달째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고난도 정치기술을 자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국가 패소 판결이 나오면 일단 항소한 후 화해하던 관행을 깨고 원고측 대표를 직접 만나 사죄하고 항소 포기를 선언했다. 흉터 투성이 손을 총리에게 잡힌 원고측 대표들이 흘린 감격의 눈물은 일본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 이런 과정을 거쳐 일본에 ‘한센병 보상법’이 탄생했다. 애초에 구마모토 지법이 국가 과오의 핵심으로 지적한 것은 한센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확립된 60년대 이후의 행위였다. 인권침해 문제와는 별도로 그 이전의 격리정책 자체는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 용서할 만하다고 보았다.
60년대 이후 정부의 정책전환 태만, 96년에야 악법을 폐지한 국회의 장기적 ‘입법 부작위’에서 위법성과 과실을 찾았다. 그러나 보상법은 범위를 확대, 1907년에 시작돼 96년까지 지속된 강제격리정책의 모든 피해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 일본의 보상법은 비슷한 목적의 국내 움직임을 자극했다. 화살은 당연히 한일 양국 정부를 겨냥했다. 일제 식민지 하의 강제격리가 해방 후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집단학살이 있었고, 70년대 후반까지도 정착촌을 벗어난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소록도로 보내지거나 ‘단종(斷種) 수술’이 행해졌다는 등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도쿄(東京)지법의 엇갈린 판결이 부른 ‘차별 판결’ 논란은 잦아들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머잖아 한국인 피해자 구제책을 내놓는다는 소식이다.
■ 그래도 국내 문제는 남는다. 국회에 보상 특별법 제정 움직임이 있고, 국가인권위도 조사를 하고 있다지만 너무 더디다. 4년씩이나 걸릴 일이 아니다. 하기야 국민을 대신해 받은 청구권 자금의 대부분을 국가가 가로챈 사실이 드러난 지 1년이 다 가도록 보상 방향조차 정하지 못한 마당이다.
그런 정부의 태만조차 묵인되는 사회 분위기다. 그 근저에 스스로를 살피는 내향적 성찰 없이 밖으로 칼날을 돌리려는 집단적 도착(倒錯)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군자는 모든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는 옛 어른의 가르침이 멀어지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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