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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저성장 시대-돈의 흐름이 바뀐다] (1) 변화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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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저성장 시대-돈의 흐름이 바뀐다] (1) 변화는 시작됐다

입력
2005.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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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대는 끝난 것 같아요. 그래서 재테크 방향을 바꾸었지요.”

20년 가까이 억척스럽게 부동산시장과 은행문을 오갔던 주부 이점순(48ㆍ서울 용산구 원효로)씨.

“남편이 건설업을 해서 부동산투자에 일찍이 눈이 트였어요. 재미도 좀 보았지요. 하지만 지난해부터 부동산시대는 가고 있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수도권 일부 아파트값이 2~3년만에 갑절로 뛰는 등 무서울 정도로 폭등하자 ‘이제는 아니다’는 판단이 서더라는 것이다.

이씨는 남편과 별도로 2년 전까지 무역업에 종사했다. 거기서 나오는 수입과 부동산투자수익금을 주로 신용금고나 상호저축은행에 넣었다.

더러 투신사에 돈을 맡기더라도 기업어음이나 채권 등 안전위주의 고정금리 상품에 몰아넣었다. 그 결과 목돈이 상당이 커졌다. 이씨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이재(理財) 성공사례인 셈이다.

그랬던 이씨가 지난해 말 재테크 방향을 틀었다. H투자증권 명동지점장의 권유로 펀드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10여년 동안 고정금리 상품만 고집했던 저로서는 실적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배당상품이 처음에 무척 꺼려졌어요. 그런데 변화하는 경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증권사 측에서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고려한 포트폴리오(투자자금배분)를 구성해주겠다고 해서 믿고 시작했지요.”

‘돌다리도 두드려보라’는 격언처럼 항상 새로운 투자를 할 때 1,000만원의 소액으로 시작한 이씨는 이번에도 1,000만원을 주식혼합형 수익증권을 통해 펀드투자를 하면서 점차 비중을 늘려나갔다.

수개월 후 주식시장이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등 강세를 보이자 환매(보유증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해서 수익을 챙겼다. ‘은행금리+3%’ 정도를 예상했던 이씨는 기대치 이상의 높은 수익에 입이 딱 벌어졌다. 이씨는 다른 금융기관에 예치했던 고정금리 상품도 만기가 돌아오는 대로 찾아 수익증권에 투자했다.

1,000만원으로 시작한 투자금이 이제는 억원대로 늘어났다. 전문가 조언에 따라 가입과 환매 시기를 적절히 조절했고, 펀드도 안정성을 위주로 배당형, 가치주형, 혼합형과 주가연계파생상품 등 10여개 상품에 분산 투자해 위험부담을 최소화했다.

이씨는 가족 명의의 적립식 펀드도 세 계좌를 열었다. “증권사 직원이 ‘10년 투자했는데도 원금이 깎이면 내 멱살을 잡아도 좋다’며 장기투자 수익에 대해 장담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맞아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펀드 투자를 통해 주식시장에 확신을 갖게 된 이씨는 직접 투자에도 손을 댔다. 역시 1,000만원으로 시작해 상당한 규모로 늘려가고 있다. 다양한 우량주에 분산 투자해 최소 6개월이상 장기 보유한 결과 상당한 수익이 났다.

초기에는 주가가 매일 등락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내일 당장 팔아버려야지’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하루이틀에 큰 돈 벌겠다는 심보로 단기 매매를 하면 크게 당하지만, 부동산을 사서 몇 년 묻어놓는 식으로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면 부동산이상의 수익을 낼 수도 있다”고 격려했다. 별로 대화가 없던 남편과 주식 등 재테크를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니 부부 금슬까지 좋아졌다.

이씨는 갖고 있는 오피스텔마저 팔려고 내놓았다. 8ㆍ31 대책 이후 거래가 뚝 끊겨 애를 먹고 있지만, 하여튼 팔리는 대로 증권상품에 투자할 작정이다.

“저는 지난해 말 적당한 시점에 투자 방향을 잘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노후 등 생활설계를 위해 부동산보다는 다양한 증권상품에 눈을 돌릴 때라고 생각해요. 선진국들이 다 그렇다고 하지 않아요?”

이씨의 경우는 극단적 사례인지 모른다. 하지만 첨단을 걸어가는 사례일 수도 있다. 최근 여러 통계수치와 증권사 창구 풍경들은 우리 사회의 재테크 지형이 바뀌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때맞춰 자본시장의 투자상품은 급속도로 고도화ㆍ 다양화하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왜 주식시장 등에 돈 몰리나

가계자금 흐름의 변화 등 재테크 지형이 바뀌는 주요 원인은 역시 저금리에 있다. 국내 은행권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9월말 현재 연 3.70%에 머물러 있다.

15%를 상회하던 환란 당시는 물론이고 6% 수준을 유지하던 2001년보다도 훨씬 낮아졌다. 은행에 돈을 묻어두면 세금을 공제한 실질수익률(실질금리)이 물가상승률보다도 못한 마이너스 또는 기껏해야 1%대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더구나, 우리 경제가 연 4~5%의 저성장 체제로 진입한 상황이라 앞으로 과거의 같은 고금리 시대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구조가 중장기적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저금리가 인구 고령화 현상과 맞물릴 경우 가계의 자산설계는 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2002년에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총인구의 7%를 상회하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다.

현재 고령 인구의 비중은 9.1%. 2018년이면 ‘고령사회’의 기준인 14%를 상회하고 2026년에는 20.8%에 이르러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반면, 저출산 풍조 등에 따라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줄어들 전망이다. 현재는 생산가능인구 7.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 되지만 2020년에는 4.6명, 2030년에는 2.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이든 노인층이든 생활이 더욱 빡빡해지게 된다.

과거처럼 자식 세대에 노후를 의탁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저금리로 인해 퇴직금으로 노후를 즐기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일찍부터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동산 투자매력도 장기적으로는 퇴색할 수 밖에 없다. 8ㆍ31대책에 의해 이미 세제 등 제도적 규제가 대폭 강화된 데 더해 시장의 구조적 측면에서도 부동산수익 전망은 예전 같지 않다.

지속적인 공급물량 확대와 저출산 등에 따른 수요 감소라는 역관계가 장기화할 거라는 얘기다. 수도권도 주택보급률이 2006년에는 100%를 넘어서게 된다.

개발수요에 의한 국지적인 부동산붐은 언제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 기대수익은 종전보다 크게 떨어지고 일부 계층만 재미를 보는 다층적 시장구조가 될 공산이 크다. 8ㆍ31대책만으로도 최소 1~2년은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이다.

이런 가운데 증시 등 자본시장상품에 대한 투자여건은 한층 나아지고 있다.

우선 기업들의 체질이 환란 후 각고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1998년 340%를 넘나들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9월말 현재 91.30%까지 떨어졌고,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000년초13%대에서 9월말 현재 15.21% 수준으로 환골탈태했다.

이것은 곧 공급측면에서 시장상품(주식)의 품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주식과 연계한 투자상품들이 무척 다양해지면서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도 투자를 유인하는 요인이다.

증시 수요도 지속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최근 개인들의 간접투자 열풍 외에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확대되고 내달부터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돼 기관의 뭉칫돈이 증시에 몰려들어올 조짐이다.

이처럼 수급여건이 개선되는 가운데 각종 시장인프라와 소프트웨어도 빠른 속도로 선진화하고 있어 투자를 손짓하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사회 경제적으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개인과 가계의 여유자금이 종래의 고답적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이동, 결국 새로운 재테크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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