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화랑미술제’(예술의 전당) 개막 이틀째인 4일, 젊은 작가들의 그림 옆에는 유난히 ‘판매됐음’을 의미하는 빨간색 스티커가 많이 붙어 있다.
집들이 빼곡한 골목길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나무판 위에 그린 박현웅씨의 채색화, 원목 위에 갖가지 얼굴표정을 옻칠화 기법으로 그려넣은 홍성용씨의 작품, 얼음 덩어리 안에 든 잎사귀를 서정적인 느낌으로 그린 박성민씨의 유화 등이 그것들이다.
가격대는 35~60만원, 크기는 10호미만의 소품들이다. 특히 만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인 박현웅씨의 그림은 전시 이틀 만에 걸어놓은 작품 7점이 모두 팔렸다.
이화익 화랑미술제 홍보이사는 “30대와 40대 초반 새로운 고객층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은 작가의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집안분위기에 어울릴만한, 비싸지 않은 작품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미술시장에 새로운 조류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이제 막 작품 구입을 시작한 ‘예비 콜렉터’들이 부쩍 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재산가치로서의 그림보다, 실질적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그림을 큰 돈들이지 않고 산다. 일단 가격대를 정한 후 그 가격대에서 집안 분위기나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그림을 고르는 것이다. 당연히 소재와 표현기법이 참신한 젊은 작가의 소품들이 주 구입대상이 된다.
지난 10월6일~18일 역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11회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에서도 판매된 275점의 70~80%가 젊은 작가들의 중저가 작품이었다. 마니프 운영위원 김윤섭 이사도 “무조건 유명작가들만 찾던 예전과 달리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더라도 느낌만 좋으면 선뜻 구매한다.
좋아하는 소재도 예전에는 꽃이나 풍경 일변도였으나 요즘은 인물, 추상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눈에 끌리는 대로 다양한 그림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화랑미술제 전시장에서 만난 김소연(35.주부)씨는 친구집에 걸려있던 추상화를 보고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지난 해 처음 40만원을 주고 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고 했다. 김씨는 “집안에 그림을 한 점을 걸어놓으니 분위기도 달라지고 아이들 정서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직접 그림을 구입해보니 애착도 생기고 관심도 늘어, 이번에는 아이들 방에 걸만한 작품을 사려고 왔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 화랑가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 심지어 집들이 선물용으로 그림을 사는 고객들도 많다. 이곳의 샘물아트갤러리 유선나 실장은 “전체 고객 가운데 80%가 젊은 작가들의 소품, 특히 값이 더 저렴한 판화를 선호한다”며 “부담 없는 가격으로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듯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찾는 재미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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