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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창목사 訪日 "日신사참배 막고 또 막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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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창목사 訪日 "日신사참배 막고 또 막을 것"

입력
2005.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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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하에서 신사참배에 반대해 옥사하신 아버님은 항상 내 가슴 속에 살아 계십니다.”

지난달 28일 90세의 연로한 몸을 이끌고 일본을 찾은 재미동포 목사 박영창(미국 LA)씨. 그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수십 차례 일본을 찾아 일본의 진정한 참회를 호소해 왔다.

특히 1982년 일본 교과서 파동 이후 본격적인 대일 항의 활동을 펼쳐온 그는 2001년 5월 40일간의 ‘일본 대장정’을 통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공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판,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번 방일에서도 일본 정부에 항의서를 보내 고이즈미 총리의 5번째 야스쿠니 참배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가 이처럼 “평생을 바쳐 일본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버지 박관준(45년 작고ㆍ당시 70)씨와 함께한 잊을 수 없는 사건 때문이다. 의사이며 기독교 교회 장로였던 아버지는 일제의 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수 차례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아버지는 일본에 건너가 정치가들을 상대로 직접 항의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39년 3월22일 일본제국 국회의사당.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3명의 한국인이 의장석 쪽으로 달려 나오며 신사참배 강요의 부당성 등 일제의 폭정을 규탄하는 전단을 흩뿌렸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박씨와 아버지, 전직 교사인 안이숙(‘죽으면 죽으리아’ 저자)씨가 주인공이었다. 의사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이들은 일본 경찰관에게 체포돼 한국으로 압송됐다.

그후 박씨와 안씨는 석방됐지만 아버지는 중형을 받았다. 결국 아버지는 해방 5개월 전인 45년 3월13일 6년간의 험한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당시 이처럼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숨진 사람들은 50명도 넘었다.

“함께 죽자고 맹세한 부자 결사인데 나만 살아남 게 돼 너무 힘들었다”는 박씨는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일본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던 아버지의 유지를 평생 받들기로 했다.

박씨는 이번 방일에서 뜻 깊은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東京)의 재일대한기독교교회에서 ‘염광(鹽光) 박관준 장로 순교 60주년 기념예배’가 개최된 것이다.

일본 기독교 단체 등과 공동으로 마련한 이날 기념 예배에서 일본의 교회지도자들은 “일본 교회가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참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입을 모았다.

도쿄= 글ㆍ사진 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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