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어리다고 말하면, 나이가 아니라 그 말이, 그를 정말 어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이 뒤로 숨고싶을 때 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애란(25)씨. 그는 2003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타며 등단해 이제껏 9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그것들을 묶어 곧 첫 작품집을 내게 될 신인이다. 그리고 그는,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가장 일찍 한국일보문학상을 탄 작가가 됐다.
그 결정은 파격이었고, 사건이었다. 4시간여의 격론 끝에 그를 낙점한 본심 위원들조차 자신들의 결정에 잠시 숙연했고, 한 심사위원은 “카메라 뒤에 숨어있어야 할 우리가 이 결정으로 하여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 끼어 본심에 올랐던 당선자 역시 놀랐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첫 반응을 먼저 전했다. “말씀을 드렸더니 ‘누가 장난전화 건 거 아니냐. 제대로 알아보고 다시 연락해라’하시더군요.” 정작 본인의 첫 느낌은 놀랍고 기쁘고…, 뭐 그런 것보다 먼저 ‘찡하더라’고 말했다. 호명된 자신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이름이 거느린 가난한 이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질문을 받은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 질문이 온당한 것이라면 이제 제가 온당한 대답을 해야 할 차례지만, 그 대답을 오래 아껴두고 싶어요. 어쩌면 평생 두고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렇더라도 서두르고싶진 않아요.” 그가 염두에 둔 질문은 대화의 다른 맥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왜 쓰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때문에’나 ‘~위해서’로 이어지는 많은 대답들, 너무 완벽하고 모범적이어서 오히려 거짓말 같은 대답들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답을 구하고 그것을 정답이라고 믿다 보면 결국 속게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죽을 때까지 몰랐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궁금해 하면서….”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화법도 얼굴 화장도 걸음걸이도 담담하다. 그의 소설도 대체로 그렇게 읽힌다. 당선작 ‘달려라, 아비’에서, 그는 아버지 부재와 가난의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결코 고통에 신음하지도 통증을 내색하지도 않는다. 자위하듯 농담으로 얼버무리지도 않으며, 상처의 맥락을 사회화 역사화하지도 않는다.
그 상처는 극복의 대상도 화해의 상대도 아니다. “아픔을 농담처럼 말하는 것 역시 극복하려는 의지가 개입된 거겠죠. 제가 작품에서 말하게 된 상처는 대결이나 화해의 정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어쩌면 처음부터 농담처럼 주어진 상처일 겁니다.”
일각에서는 그 낯선 전술을 세대적 감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탈사회, 탈역사적 세대의 감수성이라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탈역사적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9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고, 지금껏 7년을 살았어요. 그 경험들이 저의 글 어디에든 묻어있겠죠. 곧 제 일상의, 동시대의 이야기를 한 겁니다. 제게는 세대적 공감보다는 계급적 공감이 컸어요.”
그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서 보여준 담담한 잔인성,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이 지닌, 제시에 충실하면서도 뭘 제시했는지 모르게 만드는 은근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라 전달하는 태도가, 어깨에 힘주지 않고 핏대 세우지 않는 진지함이 부럽다고 말했다. “김수영의 시의 치열하면서도 범박한 느낌과 아득한 유머감각…, 그런 거요.”
그는,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 없이 무의식이 던져주는 한 문장을 옮겨놓고,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면 계속 써나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중반부쯤 이르러서야 작품의 구성과 결론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당선작도 그렇게 썼어요. 쓰다 보니 아버지가 뛰어들더군요. 말도 안 붙이고 계속 내버려뒀는데 계속 뛰기에 아버지 이야기가 된 거죠.”
그는 초등학교시절 동시 숙제를 베껴 냈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있고, 그 부끄러움과 뿌듯함의 야릇한 감흥이 오래 남아 소설을 쓰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낯가림이 심한 그는 등단하던 해 겨울 현대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인연으로 시상식에 초대돼 멋 모르고 나갔다가, 그가 좋아한다는 성석제(당선자) 씨에게 인사도 못하고, 먹고 싶은 떡도 제대로 못 먹고 나왔다는 얘기를 웃으며 했다.
그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했다. 귀찮다는 것이다. “이번에 상도 타고 했으니 그 싫어하는 일을 해볼까 해요. 상금으로 카메라 하나 사서 서울을 여행할 생각입니다. 장소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으로서의 서울여행!” 문예지 겨울호에 발표할 단편 2편을 끝낸 뒤 써볼 생각이라는 첫 장편소설, 그 첫 문장을 던져줄 ‘무의식’ 공간으로 떠나겠다는 말일까.
▲ 김애란씨는
1980년 인천생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입학
2003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소설부문) 수상
2005년 대산창旁瘦?수혜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한국일보문학상 심사평 "가난한 주체 독자적 세계 구축"
우리들 중의 누구도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예상하기 힘들었던,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받고 난 듯한 힘겨운 심사 과정이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후보작들이 대부분 뚜렷이 다른 개성을 보여주면서 그 나름의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근본적으로, 그 문학적 질감의 차이들은 서열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선택의 기준을 잡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웠다.
아마도 그래서였겠지만, 우리는 처음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혹은 ‘무난한’ 선택을 고려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주로 거론했던 대상이 이미 평단과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공인된 두 작가의 작품이었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 그런 자기반성이 든다는 말이다.
물론 그 두 작품은 고유의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한 작품은 우리 사회의 구석진 곳을 찾아 소외된 삶을 따뜻하게 싸안는 그 순정한 시선이, 다른 한 작품은 흥미로운 자료들을 동원하면서 실존의 심연을 파고드는 끈덕진 탐색과 사유가 우리의 호감을 얻었다. 그러나 논의가 전개되면서, 두 작품은 각 작가가 그 동안 도달한 성과에서 그리 큰 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한국일보 문학상’이 그 동안 일반적인 지명도와 상관없이 우리 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 보이는 신진 작가들에 주목해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즈음의 문학상들이 특화된 변별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상기하게 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보다 과감한 선택의 필요성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면모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작품 외적인 배려 사항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각 작품이 스스로 어떤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그에 적합한 소설 문법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 형상화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로 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다소 뜻밖인 한 선택에 도달했다. 김애란 씨의 ‘달려라, 아비’가 맨 마지막에 남은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단편소설은 가난에 대한 한국문학의 상상력에 작지만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듯하다. 그 동안의 한국문학은, 가난한 자를 대상으로 등장시키든 주체로 등장시키든, 사회비판을 기조로 삼아 연민이나 연대의식을 확산시키는 모종의 도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난의 주체가 펼쳐 보이는 것은 자기 밖의 그 어디에도 핑계를 대지 않는 철저한 자존(自存)의 상상력이다.
요컨대 자신만의 독자적 언어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자의 진정한 주체성과 자율성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말과 말 사이에 가난처럼 비어 있는 여백을 상상적 도약의 공간으로 탄력 있게 살려내는 이 작품의 언어 체계는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생성해내는 발전기라 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우리의 선택은 매우 모험적인 것으로 끝맺어졌다. 이 모험이 무모한 짓이 안 되도록 만드는 것은 이제 수상자의 몫이다. 아직 첫 소설책조차 펴내지 않은 수상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건대, 부디, 이 격려가 앞으로 구차한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세계를 더욱 깊고 넓게 펼쳐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불어, 다른 후보자들에게는 미안함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단지 ‘어떤 선택’의 결단으로부터 한 순간 비껴나갔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문학이 모두 한국문학의 장(場)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상을 왜 꼭 한 사람에게만 주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본심 심사위원= 이인성 박혜경 서영채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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