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시인은 다부지다. 그의 체형도 그렇지만, 심성 역시 결기로 단단하다. 쉬운 타협에 투항하지 않는 삶의 방식은 가끔 그를 외롭게 하는 듯도 하지만 그것은 구경꾼의 짐작이기 쉽다.
그는 자신이 믿는 원칙의 외로움 앞에 의연해 보인다. 안으로 공글려 둥그레진 그는(그의 시는), 그래서 외로운 타자에의 따듯한 위안이다. 그런 시들로 새 시집 ‘오른손잡이의 슬픔’(고요아침 발행)을 엮었다.
“서울은 나에게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쌀 한 톨 제 살점 같이 귀중히 여겨 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쌀’)
표제작은 오른손을 다친 뒤 깨닫게 된 왼손의 존재감을 이야기하는 시다. “/…/나는 오른손 왼손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으나/ 태어나면서 나는 오른 손에 힘주며 세상을 잡았다…” 숟가락을 잡고 연필을 쥐고 악수하고 주먹 날리고 새끼손가락으로 사랑을 약속한 것도 오른손이었으니 ‘나’에게 오른손은 ‘우주의 무게중심’이었다. “오른손 아프고부터 왼손으로 세상을 잡아 본다/ 왼손으로는 지푸라기 하나 쉽게 잡히지 않는다/ 자꾸만 놓치고 마는 왼손의 미숙 앞에/ 오른손의 편애로 살아온 온몸이 끙끙거린다” 그는 시에서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절반을 잃고 사는 것”이고 그래서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슬픈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다부짐은 이런 성찰과 자성으로 공글려진 결기다. 그 맑고 단단한 슬픔 앞에 외로움을 엿보려는 것은 염치없고 부박한 짓이다.
▲ 다시, 중년
혼자 있으면 중후한 시간의 몸, 몸들이지만
모아놓으면 구겨지고 볼품없어지고
뒤집어진 내 뒷머리처럼 통속하다
누런 모자 쓰고 비닐 완장 차고
비상교육 받는 새벽 민방위 훈련장에서
몸서리 쳐지는 이 중년
몸이 세상의 화엄 만드는 화음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소리가 될 수 없는 불협화음의 몸, 몸들
몸이 칼 되어 오와 열 맞추던 시절 있었는데
앞줄 옆줄 아무 줄도 맞춰 설 수 없는 세월 왔다
후줄근한 몸으로 내가 나를 찾아왔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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