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하고 물렁물렁한 애벌레가 뭐가 예뻐? 징그럽지.
‘똥이 어디로 갔을까’ ‘보리밭은 재미있다’ 같은 생태동화를 써온 작가 이상권씨도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이 책은 애벌레에게 사랑과 존경을 바치는 소설이다.
애벌레를 어루만지며 “참 보드라워. 너무 귀여워.” 하고 말하는 어린 딸 덕분에 애벌레를 다시 보게 되어 직접 길러보고 산에 가서 관찰하면서 친해졌단다.
주인공은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이 나방은 어른 손바닥 만하게 큼직한데, 왕자처럼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다. 애벌레는 어른 집게손가락 만큼 통통하게 자라서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나고 성충이 되어 고치를 찢고 날아오른다. 하지만 곳곳에 천적이 널린 숲에서 냉혹한 먹이사슬에 걸리지 않고 살아 남기란 무척 힘들다.
이 책에 나오는 열 세 마리 애벌레의 운명도 순탄치 않다. 특히 낙엽 지는 쌀쌀한 숲에서 고치를 짓지 않고 남아있던 마지막 애벌레의 죽음은 인상적이다. 모르는 사이 몸 속에 천적인 고치벌 새끼를 키운 것이다. 고치벌이 낳은 알이 부화하면서 구더기들이 애벌레 몸을 뚫고 나온다. 그래도 애벌레는 다른 벌이 구더기를 공격하려 하자 제 몸을 마구 흔들어 ?아버리고 죽는다.
작가는 애써 감동적인 묘사 같은 건 안 한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치열한 현장을 담담하게 전할 뿐이다. 그래서 생명의 소중함이나 자연의 순리 같은 것을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이지만 한 편의 생생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 우리의 주인공들이 잎을 갉아먹고 사는 산초나무 주변 숲에서 벌어지는 이 자연의 드라마에는 온갖 나무와 바람과 달빛, 애벌레를 노리는 새와 벌, 왕침노린재, 개미, 도마뱀, 박쥐 등 수많은 숲속 생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얽혀있는지 참 꼼꼼하게도 전해준다.
오랜 관찰 덕분이다. 애벌레를 좀 더 가까이 느껴보고 싶어서, 산에 가서 녀석들이랑 똑같이 비를 맞고 찬바람 부는 날 산초나무 밑에 누워보고 비바람 치는 밤에 알몸으로 몇 시간 동안 산초나무 밑에 서 있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렇게 스스로 애벌레가 되어보려고 했던 교감의 결실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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