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다시피 007 영화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영국 대외정보국 소속 공작원이다. 정식 명칭은 Secret Intelligence Service(SIS), 왕실 직속으로 국내정보국인 MI5와 대비해 MI6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가 다 아는 정보기관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비밀기관이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한국의 국가정보원과도 달리 국장의 이름 조차 알리지 않는 것이 당연시 돼왔다. 영화에서 본드의 직속 상관이 단지 ‘M’으로만 나왔듯이 실제 MI6 국장도 ‘C’로만 알려져 있었다.
■ 인터넷에 없는 것이 없는 이 시대에 MI6만큼은 홈페이지가 없었다. 마치 비밀의 대명사인양 이름을 떨치던 그 MI6가 지난달 13일 자정을 기해 홈페이지를 열었다고 해 화제를 던졌다.
주소는 www.mi6.gov.uk 또는 www.sis.gov.uk이다. 1909년 창설 이래 100년 가까운 역사에 새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익명의 국장 이름 ‘C’는 초대 국장 맨스필드 스미스 커밍(Cumming) 경(卿)의 성을 딴 것이다. 지금까지 몇 명의 국장이 재임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홈페이지에는 현직 국장이 존 스칼렛이며 본부가 런던 템즈 강변의 큰 건물이라고 새삼스럽지만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 홈 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MI6 본부는 가족적 분위기이며 안에는 스쿼시와 농구 코트, 체육관, 커피 라운지에 술 마시는 바도 있다고 한다.
MI6의 인터넷 공개는 세상의 변화에 따른 것일 테지만 사실은 MI5와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MI5가 웹사이트를 통해 유능한 직원을 공개적으로, 풍부하게 충원하는 데 비해 MI6가 더 이상 폐쇄적인 충원방식을 고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MI6는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재들을 첩보작전 같이 은밀하게 뽑아 왔으나 이제 그런 방식이 한계에 왔다고 한다. MI6는 인터넷 개방 공모를 통해 2008년까지 50%를 증원, 3,000명으로 직원을 늘려 대 테러 작전 등 폭증하는 정보수요에 대응할 방침이다.
■ 그러나 MI6의 홈페이지는 보통의 경우처럼 완전 개방은 아니다. 서버는 본부로 추적이 안되도록 런던 외부에 두고 있으며 방문자와의 쌍방향 대화는 못하게 돼 있다.
그래도 홈페이지 접속은 폭주해 개설 첫날 불과 몇 시간 만에 350만 명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MI6의 변신은 현대 정보기관의 진화이자 발전상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비하면 전직 원장에 간부들이 검찰수사를 당하는 만신창이 국정원은 지금 뒤로 가는 중이니 큰 일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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