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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배추밭을 지키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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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배추밭을 지키는 친구

입력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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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 대관령에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언 다음 고향으로 가는 길가의 배추밭을 보는 마음이 아팠다. 가을엔 온 밭에 푸르게 펼쳐져 있던 배추들이 겨울이 되어도 뽑지 않아 그대로 하얗게 얼어버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 동생을 저 추위 속에 두고 나 혼자 집으로 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그게 벌써 몇 해째였는데 올해는 무 배추 값이 뛰어 그런 안타까운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값이 오른 무 배추 때문에 또 다른 일이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엊그제 고향에 있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봄에 두릅밭에 도둑이 들어 두릅 순을 모두 잘라간 적은 있어도, 또 어릴 때 남의 집 논에 들어 벼를 몰래 훔쳐 가는 도둑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어도, 무 배추밭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그런 도둑도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로 드나드는 외지 차량들을 전과는 다른 눈으로 살펴보게 된다고 했다. 몇 년째 배추밭을 얼리던 친구였는데 모처럼 그의 목소리에 흥겨움이 묻어났다. 나 역시 열일곱 살 때 혼자 대관령에 올라가 배추 농사를 짓던 시절이 생각났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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